지난 달 25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첫 선을 보인 프랑스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는 신선한 충격을 던져주었다.
브로드웨이나 웨스트엔드 작품에 길들여진 국내에서 대사가 전혀 없는 콘서트형 뮤지컬이 얼마나 관객들을 사로잡을 수 있을까라는 의혹은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다.
가장 큰 매력은 역시 리샤르 코시앙트가 작곡한 음악이었다. 막을 여는 음유시인 그랭그와르(리샤르 샤레스트)의 '대성당의 시대'부터 객석은 가슴을 파고드는 멜로디와 귓전에 울리는 뛰어난 가창력에 빠져들었다. 에스메랄다(나디아 벨)와 그녀를 사랑하는 세 남자 콰지모도(맷 로랑), 프롤로(미쉘 파스칼), 페뷔스(로랑 방) 등 7명의 가수가 연달아 열창하는 54곡은 전율 그 자체였다.
역동적이며 화려한 춤도 놀라운 볼거리다. 음악에 맞춰 여러 명이 한 동작을 이루는 브로드웨이의 군무(群舞)와는 달랐다. 16명의 무용수들은 현대무용에서 발레, 아크로바틱, 브레이크 댄스까지 각자 자유로운 몸짓을 보여준다. 그러나 사랑이라는 운명에 몸을 던진 주인공들의 감정을 전달하는 데는 통일된 몸 동작으로 다가선다.
무대는 간소해 보이지만, 심혈을 기울여 만들9어낸 흔적이 역력하다. 마치 미니멀리즘에 입각한 회화를 보는 듯하다. 단순한 벽 같은 대형 조형물은 노트르담 성당이 되기도 하고, 감옥으로 일순간 변하기도 한다. 대형 석상이 무대를 가로지르기도 하고, 배우들은 벽을 오르내리며 주인공들의 고뇌를 전달해준다. 간단한 조명과 막을 이용해 최대의 극적 효과를 얻어내는 연출의 힘도 음악과 춤이 조화되어 만든 감동에 무게감을 더한다.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오는 혼란의 시기가 배경인 작품이지만 무대를 장식하는 모든 것들은 지극히 현대적이다. 원작에 묘사된 시대상을 재연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벗어났을 때 얻을 수 있는 새로운 창작의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빅토르 위고의 원작 소설 내용을 웬만큼 알고 있다면 자막의 도움 없이도 즐길 수 있는 공연이다. 음악과 춤이 만국공통어라는 평범한 진실을 다시 한번 일깨워주는 무대다.
프랑스에서는 1998년 초연 되어 200만 관객의 가슴을 울렸다. 삽입곡 ‘벨’(Belle)은 프랑스 음악 싱글 차트에서 44주간 1위를 차지했으며, 유럽 10개국 공연도 큰 호응을 얻었다. 뮤지컬 불모지로 인식되던 파리에 뮤지컬 붐을 일으켜 ‘신디’ ‘십계’ 등 대형 작품들의 산파 역할을 하기도 했다. 20일까지. (02)501-1377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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