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바논 백향목은 레바논 산맥에서만 자라는 거대한 침엽수로 개잎갈나무(히말라야 시다)에 가까운 소나무과 나무다. 오늘날에는 산맥 정상 일부에서만 볼 수 있는 희귀목이지만 구약시대에는 울창한 산림으로 레바논 일대를 덮고 있었다고 한다. 당시의 유대인들은 소나무과 특유의 향에 재질이 아름다운 이 나무를 종교적으로 귀하게 여겨 성전 건축 자재로 썼다. 그 유명한 솔로몬 성전은 내부를 백향목으로 장식했고 들보도 백향목이었다. 레바논은 이 나무를 나라의 상징으로 삼고 있으며 레바논 국기의 정중앙에는 백향목이 그려져 있다.
■ 엊그제 레바논 친 시리아 정부의 퇴진을 이끌어 낸 민중 시위를 미 국무부는 ‘백향목 혁명’(Cedar Revolution)이라고 명명했다. 1989년 체코슬로바키아에서 바츨라프 하벨이 주도한 벨벳 혁명, 2003년 말 그루지야에서 장기집권 독재자 에두아르트 셰바르드나제 대통령을 밀어낸 장미혁명, 지난해 말 우크라이나 대선에서 친서방의 빅토르 유센코 야당 후보를 당선시킨 오렌지 혁명과 같은 반열로 평가한 것이다.
■ 경상북도보다 조금 작은 면적에 인구 300만여 명의 레바논은 한때 중동의 파리라고 불렸을 만큼 관광지로 각광을 받았다. 그러나 1975년 이슬람 좌익연합과 기독교 우익 군부세력의 충돌로 내전이 발발한 이후 모든 것이 변했다. 이스라엘과 시리아가 각각 군대를 주둔시키면서 국제전 양상으로 발전했고 유엔 다국적군 파견에도 인질극과 테러가 일상화하다시피 했다. 1990년 12월 기독교계와 이슬람계 지도자들이 참여하는 거국내각이 들어서면서 내전은 가까스로 종식됐지만 정정 불안은 계속돼 왔다.
■ 레바논의 이번 민중 시위는 지난달 14일 발생한 라피크 하리리 전 총리의 암살사건이 발단이었다. 미국은 즉각 시리아와 친 시리아계 정부를 배후로 지목했지만 진상은 오리무중이다. 레바논이 이 사태를 계기로 안정된 민주국가로 거듭 태어날지는 속단하기 어렵다. 그러나 최근의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 선거, 이라크 총선, 이집트 무바라크 정부의 직선제 개헌 수용선언 등과 맞물려 중동의 민주화 바람에 에너지를 더할 것은 틀림 없다. 중동민주화를 역설해 온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이 회심의 미소를 지을 만하다.
이계성 논설위원 wk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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