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께 감사해요. 이 귀중한 손 덕분에 피아노와 친구가 됐으니까요. 제게 짧은 다리를 주신 부모님께도 감사합니다. 멋진 자가용(전동휠체어)을 선물 받았잖아요. 모두모두 감사합니다."
손가락이 양손에 두개씩만 있는 ‘네 손가락의 피아니스트’ 이희아(20)양이 한국재활복지대학 멀티미디어음악과에 입학했다.
1일 그의 입학을 축하하기 위한 조촐한 잔치가 서울 북한산 구기동 등산로에 있는 ‘카드로 만든 집’에서 열렸다. ‘카드로 만든 집’은 역시 장5애를 앓고 있는 발달장애(자폐증) 청년들이 자립하기 위해 만든 작은 카페(02-379-7004)다. 10평 남짓한 실내는 ‘장애인먼저실천운동본부’ 홍보대사인 탤런트 정선경, 만화 ‘용하다, 용해(무대리)’의 작가 강주배씨 등 축하 손님들로 꽉 찼다.
입학선물도 많이 받았다. 무엇보다 케어라인에서 기증한 최신 전동휠체어(시가 290만원)가 이양의 마음을 잡았다. 2일 입학식과 함께 기숙사 생활을 해야 할 그에게 전동휠체어는 두발과도 같다. 그는 손가락 네 개로 피아노를 연주해 알려졌지만 사실 다리도 무릎 아래가 없다. 걸을 순 있지만 아기처럼 아장아장 걷는 수준이다. "제 키(103㎝)가 네 살짜리 아기랑 같대요. 이제 넓은 캠퍼스를 마음껏 누빌 수 있게 돼 기뻐요."
정선경씨는 꽃다발과 ‘날마다 행복해지는 책’을 선물했다. 그는 "장애에 굴하지 말라는 의미에서 책을 선물했는데 희아의 밝고 활기찬 모습에 오히려 제가 감동을 받았다"고 말했다.
머리핀을 곱게 꽂은 이양의 뽀얀 얼굴에는 줄곧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피아노가 있으면 감사연주를 들려주고 싶은데…." 대신 노래선물을 했다. 푸치니의 오페라 ‘자니 스키키’의 아리아 ‘오 나의 사랑하는 아버지’가 이양의 갸날픈 목소리를 타고 은은하게 번졌다. "성악한지 두 달 밖에 안돼 아직 잘 못하죠?"
‘선천성사지기형 1급장애’을 안고 태어난 이양은 여섯 살 때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다. 연필이라도 잡기 위해선 손가락 힘을 키워야 했기 때문. 건반 소리를 내는 데만 6개월이 걸렸다. 어머니 우갑선(50)씨는 "매일 10시간씩 연습하느라 손이 까져 피가 나지 않은 날이 없었다"고 회고했다.
1992년 전국학생음악연주평가대회에서 와이만의 ‘은파(Silver Wave)’를 연주해 비장애인 학생들을 누르고 당당히 유치부 최우수상을 탔다. 일본 장애인시설 ‘꿈의 공방’ 방문 연주(97), 시드니장애인올림픽 축하연주(2000), 소프라노 조수미와 협연(2003) 등으로 실력을 인정 받았다. 희아의 사연이 알려지면서 장애극복 대통령상, 신지식인 청소년상, 문화예술인상 등도 수상했다.
올해 성인이 되는 이양은 여전히 욕심이 많다. 피아노, 성악뿐 아니라 작곡공부도 하고 싶다. 기계 만지는걸 좋아해서 컴퓨터음악도 배우고, 만든 곡을 직접 연주하고 노래를 부르고도 싶단다. "엘튼 존 같은 싱어송라이터가 되는 게 꿈이거든요. 사람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다면 뭐든지 할거에요. 도와주신 많은 분들에게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고찬유기자 jutd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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