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일요일에 사법시험 제1차 시험이 있었다. 전국적으로 2만 명 가까운 응시생들이 한판 승부를 벌였다. 그리고 그 몇 배에 달하는 예비 고시생들이 이 순간에도 객관식 문제집을 보며 시험준비에 여념이 없다. 법학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입장에서 엊그제 같은 날은 우울하다.
우수한 법률가는 어떻게 생겨나며, 법률가에게 진정으로 중요하고 필요한 능력이 뭔지를 생각한다면, 예비 법조인들이 암기하지 않아도 되는 정보를 외우기 위해 그렇게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이는 현실은 안타깝다. 어떤 사안에 대하여 법원이나 학자들이 취한 견해를 외어야 좋은 법률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왜 그러한 견해를 취하는지를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객관식 시험 출제자는 이해력 판정에 도움이 되는 문제를 출제하고자 노력하겠지만, 시험을 준비하는 이들로서는 채용된 견해가 무엇인지를 암기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다. 그래서 수험생들은 판례요지와 주류적 학설의 입장을 암기하는데 전념하고 있다.
객관식 테스트의 문제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은 이 제도를 유지할 수 밖에 없는 현실적 이유가 명백하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과연 그런가. 법률가의 선발을 국가가 집중관리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전제를 채용하는 경우에만 법조지망생 수만 명이 객관식 문제집풀이로 밤을 지새는 상황을 불가피한 것으로 치부하게 된다.
그러나 눈을 들어 살펴 보면 대안이 없지 않다. 법률가의 선발을 중앙정부가 관장할 것인가, 법원이 관장할 것인가, 변호사 단체가 주도하는 형태를 취할 것인가부터 생각해 봐야 한다. 그리고 전국적으로 통합된 선발 경로를 채택할 것인가, 아니면 지역적으로 분화된 선발 방식을 택할 것인가도 검토해 볼 문제이다. 프랑스는 연방제 국가도 아니고, 우리 못지않게 모든 제도가 중앙집중화해 있지만 변호사 선발은 지역적으로 분권화해 있다. 법조지망자의 능력을 일회성 시험으로 평가할 것인가, 여러 차례 계속적으로 평가할 것인가, 평가 주체도 교육 담당자로 할 것인가, 교육과 무관한 기관이 할 것인가도 선택의 여지가 있는 부분이다.
법률교육을 담당하는 입장에서 품는 꿈은 변호사 선발이 지역적으로 분화해 수행되고, 교육기관이 법조지망자의 능력과 학습을 계속적으로 평가하는 것이다. 물론 이를 위해선 각 교육기관이 수행하는 평가가 공정한지를 객관적으로 점검할 수 있는 제도가 전제돼야 하며, 각 학교에 등록한 학생의 수준이 일정 기준을 충족해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의 상황은 이런 전제 조건들이 충족될 수 없었기에 모든 것을 중앙 정부에 맡길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로스쿨 제도가 도입되고, 각 로스쿨이 제공하는 교육의 내용과 수준, 그리고 학생 평가의 적정성이 엄격히 상호 검증될 수 있는 시스템이 차제에 도입된다면 로스쿨의 평가를 신뢰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된다면 변호사 선발은 지역적으로 분화해 로스쿨 단위로 이루어질 것이며, 로스쿨에 대한 감시와 검증을 계속적으로 수행함으로써 변호사 선발의 공정성을 궁극적으로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우리 학생들은 더 이상 고시촌에 칩거하며 객관식 문제집과 씨름하지 않아도 될지 모른다. 그리고 우수한 학생들이 전국 각지의 로스쿨에 분산돼 지망하고 입학하게 돼 소위 일류대학이라는 것이 적어도 법학 분야에서는 그다지 큰 의미가 없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나쁜 점도 있다. 이때까지 감시와 통제를 그다지 받지 않았던 법학교수들이 갑자기 감시와 검증의 대상이 될 것이므로 예전과는 여러모로 사정이 달라질 것이다. 평가하는 주체로만 있다가 평가와 감시를 받는 대상이 되는 것은 그다지 유쾌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 학생들을 고시촌에서 구출해 낼 수 있다면 이는 스승으로서 기꺼이 받아들여야 할 책무가 아닐까?
김기창 고려대 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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