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까지 살지 모르겠소만 앞으로는 통일 후 북한땅에 심을 무궁화 개발에 힘을 쏟을 작정이야."
충남 공주시 정안면 월산리에서 ‘무궁화 할아버지’로 통하는 구석회(94) 옹은 무궁화 이야기가 나오자 얼굴이 환해지고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고령으로 보청기를 사용하고 있어 말을 금방 알아듣지 못하는 경우가 있지만 무궁화농장 조성과 새로운 품종 개발, 무궁화 보급과정 등을 설명하느라 말이 끊이지 않는다.
구 옹이 무궁화가 나라꽃임에도 불구하고 ‘벌레가 끼고 꽃이 볼품이 없다’는 그릇된 인식에 대해 자신의 인생을 걸고 본격 연구를 시작한 것은 1960년대 중반부터다. 하지만 오래 전, 황해도 해주가 고향인 그는 보통학교 3학년 때 친척집에 아버지 심부름을 가서 하루를 머물다 이튿날 아침 우물가에 핀 아름다운 꽃을 보게 된다. "이 꽃이 바로 우리 겨레꽃인 무궁화다"라는 친척 할머니의 말은 이후 그의 전 생애에 아로새겨졌다.
그러나 일제하에서 무궁화를 심는다는 것은 꿈도 꿀 수 없었다. 해방이 됐어도 사정은 달라지지 않았다. 그는 결국 "마음껏 무궁화를 심을 수 있는 곳을 찾아" 월남했다. 수원에 터전을 잡았지만 생활을 해결하느라 무궁화는 마음 속에만 담아둘 수 밖에 없었다. 그러다 우연히 고향에서 알던 산림청 공무원을 만나면서 무궁화에 대한 관심이 되살아났다.
처음에는 독립기념관 인근 충남 천안시 북면 지역에 자리를 잡고 5년동안 육묘장을 운영하다 69년 더 좋은 땅을 찾아 월산리로 이주했다.
이때부터 그는 무궁화 연구와 보급에 인생을 걸었다. 남의 논을 빌려 5,000평 규모의 육묘장을 만들고, 일제가 없애버린 좋은 품종의 무궁화를 찾아 전국의 벽지와 외딴 섬을 돌아다녔다.
현재 구 옹의 무궁화농장은 월산리 농장 1만평과 ‘3·1농장’으로 명명한 사곡면 농장 3만1,000평 등 모두 4만1,000평에 이른다. 50~60종의 무궁화 100여만 그루가 자라고 있다.
새 품종도 다수 개발했다. 무궁화 도감에 수록된 충무, 월산, 치우, 윤옥, 여해 등이 구 옹이 개발한 품종이다.
구 옹은 꽃의 모양새에만 신경 쓰는 현재의 무궁화 연구 경향이 못마땅하다고 했다. 꽃의 모양새도 중요하지만 통일 후 북한땅에 무궁화를 심으려면 추위에 견딜 수 있는 있는 품종 개발이 시급하다는 것이다.
"백두산 천지에도 심을 수 있는 무궁화 품종을 개발해야 해. 어려워도 이것을 꼭 하고 가려고 요즘은 운동을 하고 있어"라고 구 옹은 의지를 보였다.
공주= 글·사진 허택회기자thhe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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