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무너져도 은행 예금밖에 모른다는 분들도 요즘 주식형 펀드에 가입하겠다고 난리입니다. ‘큰 손’ 고객의 투자 패턴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서울 강남의 부유층 고객을 겨냥해 개설된 외환은행 스타타워지점의 노병윤 지점장은 "올들어 급변한 객장 분위기에 스스로 놀랄 지경"이라고 말했다.
‘초 저금리’에 분노한 시중자금이 은행 예금이나 채권 등 안전자산을 탈출, 대이동을 시작했다. 일부 자금은 여전히 부동산 시장을 기웃거리고 있으나, 큰 줄기는 종합주가지수 1,000포인트를 돌파한 주식시장으로 흘러 들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28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증시로의 자금 유입을 나타내는 고객예탁금, 주식형 수익증권, 변액보험잔고 등이 모두 급증하고 있다. 지난해 10월말 7조7,692억원이던 주식형 수익증권 적립규모는 4개월 만에 2조원 가량 증가, 24일 현재 9조6,470억원에 달하고 있다. 또 지난해 말 8조2,063억원이던 고객예탁금은 24일 10조7,042억원으로 2조5,000억원이나 늘었다. 한 관계자는 "지난해 10월 이후 무려 5조원 가량의 시중자금이 증시로 유입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과거에도 주가가 급등하면9 증시로 자금 유입이 이뤄졌으나, 이번에는 그 성격이 전혀 다르다는 입장이다. 현대증권 양창호 연구위원은 "추세적이고 구조적인 변화를 동반한 자금이 증시로 유입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과거 흐름과의 가장 큰 차이점은 적립식 펀드와 변액보험 등 이전에는 볼 수 없던 획기적인 간접투자상품이 등장, 장기적으로 안정된 자금이 증시로 유입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양 연구위원은 "이전에는 주가가 빠지면 증시 투자자금도 단기간에 빠져나가 지수 급락을 초래했으나, 이제는 그럴 염려가 없다"면서 "샐러리맨의 월급날이 집중된 월말마다 2,000억원 가량의 자금이 자동이체 방식으로 증시에 유입돼 지난해 10월말 이후 ‘월말 효과’가 뚜렷이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마땅한 신규 투자대상을 찾지 못하고 있는 기업들이 증시에 잉여현금을 공급하고 있는 것도 두드러진 변화다. 증권선물거래소에 따르면 지난해 상장 기업들이 보유 중인 잉여현금으로 자사주를 매입해 소각한 규모는 3조4,126억원으로 2000년(1,628억원)의 21배에 달했다. 기업들이 증시에서 자금을 조달하기 보다는 자금을 공급하는 셈이다.
외환은행 노병윤 지점장은 "시중자금의 대이동을 촉발시킨 가장 강력한 주체는 연기금"이라며 "기금관리법 개정으로 국민연금의 주식투자 비중이 늘어나고 새로 퇴직연금 제도가 도입될 경우 국내 증시, 특히 지수관련 대형 우량주의 주가는 계속 높아질 수 밖에 없다"고 내다봤다. 그는 "일부 기관투자자와 ‘큰 손’들이 증시로 자금을 이동시킨 것도 필연적으로 증시로 옮겨올 수 밖에 없는 연기금에 앞서 관련 종목을 선취매하기 위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증권연구원도 "수익률 제고와 투자 다변화를 위해 국민연금이 매년 주식투자 비율을 1%씩 올릴 경우 2020년에는 주식투자 규모가 180조원에 달하고, 2035년에는 343조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했다. 5년간 이어온 저금리로 방황하던 시중자금이 증시로 대이동을 시작했으며, 자금의 대이동은 투자의 패러다임을 바꿔가고 있다는 것이다.
조철환기자 chcho@hk.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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