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낭여행 갔을 때 일이다. 파리에서 출발해 독일을 지나 오스트리아 빈까지 가는 기차에 몸을 실은 나는 바늘방석에 앉은 기분이었다. 여행 끝 무렵이라, 내 유레일패스의 유효기간이 지나 다른 사람의 것을 사용했기 때문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표 검사하는 차장이 여권을 요구하면서 거짓말은 들통이 나버렸다. 열차 내 티켓검사 때 별 무리가 없다는 주변사람들의 말만 믿은 게 잘못이었다. 이리저리 변명을 늘어놓았지만, 도망 갈 구멍이 전혀 없었다. 비상금까지 몽땅 벌금으로 내고서 프랑스 국경도시 스트라스부르에 내려야만 했다.
걸었다. 계속 걸었다. 한밤에 프랑스와 독일의 국경을 걸어서 넘었다. 신용카드를 사용할 수도, 스트라스부르에서 하루 묵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내 자신을 용서할 수가 없었다. 약은 수로 이익을 추구하다가는 더 큰 화를 입게 된다는 단순한 진리를 몰랐다니. 게다가 뻔뻔한 거짓말로 위기를 모면하려 했다니. 화나고 부끄러워 참을 수가 없었다. 아무 생각없이 걷기만 했다. 둘러멘 배낭이 어찌나 무겁던지, 어깨가 아프다 못해 끊어질 것만 같았다. 차라리 어깨가 부러지는 벌이라도 받아야 분노와 수치가 씻어질 것만 같았다.
얼마나 걸었을까. 라인 강 너머 독일 국경이 눈에 들어왔을 때 나는 결국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뭐가 그리 서러웠는지, 국경 한 가운데서 밤새도록 울고 또 울었다. 벌써 10여 년 전의 일이건만, 그 때의 깨달음은 너무나도 생생하다. 지금도 거짓말의 유혹에 직면하면 자동경보처럼 어깨가 저려온다. 거짓말은 무겁다. 아무리 힘 센 장사라도 억눌린 양심을 견디지 못한다. 이건 너무나도 단순한 진리다. 한 밤에 묵주를 받으러 호텔을 찾을 만큼 신앙심 깊은 어느 정치인에게, 내가 몸으로 배운 이 '단순한 진리'를 들려주고 싶다.
황재헌 연극연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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