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조상들의 삶 곳곳에는 그림이 등장했다. 혼례 때는 모란도 병풍을 치고, 신혼부부 방에는 화려한 화조도로 만든 병풍을 둘렀다. 한 해가 시작될 때는 호랑이나 용 그림으로 귀신을 쫓고 복을 불렀다. 그렇게 생활 깊숙이 침투했던 민화가 지금은 매우 보기 드문, 진귀한 것이 돼버렸다. 민화 전시도 드물다. 1970년을 전후해 민화 수집 붐이 일었으나, 민화의 아름다움을 먼저 발견한 미국 일본 등의 외국의 수집가들에 의해 상당수가 해외로 빠져나간 뒤였기 때문이다.
3월8일까지 동산방화랑에서 열리는 ‘한국민화전’은 모처럼 민화의 멋에 흠뻑 빠질 수 있는 기회다. 98년 호암미술관의 ‘매혹의 우리 민화’전 이후 오랜만에 열리는 대규모 민화전으로, 화조화를 중심으로 까치호랑이 그림, 청룡도, 문자도, 책거리그림 등 100여 점의 전통 채색민화가 선보이고 있다. 전시작은 대개 18세기에 그려진 것이지만, 당시의 자유로운 표현과 해학적 요소, 장식적 채색 덕분에 정통 문인화에서는 엿볼 수 없는 현대적 감각도 느껴진다.
꽃 풀 나무 새 등을 화려한 채색으로 묘사해 장식적 효과가 큰 화조도는 부귀와 부부화합을 기원하는 그림이었다. 특히 부귀영화를 상징하는 모란 그림은 혼례식 때 필수였다. 꽃송이가 탐스러운 모란 밑동에 괴석을 그린 괴석모란도와 화병에 꽃과 가지를 꽂은 기명모란도도 나왔다.
익살이 넘치는 표정의 호랑이와 까치를 한 화면에 그린 까치호랑이 그림은 귀신을 쫓는 벽사의 대표격. 호랑이를 신령이나 산신과 동일시하며 나쁜 귀신을 막아주는 영물로, 까치를 길흉화복을 주관하는 서낭신의 심부름꾼으로 여기던 민간신앙과 깊은 연관이 있다. 용그림 중에서도 기우제 때 사용한 운룡도는 제사를 마치면 태워버려 전해지는 경우가 드문데 귀신을 쫓고 재앙을 막아준다는 청룡도와 함께 선보인다.
사랑방 장식용으로 다분히 선비 취향의 민화인 책거리그림과 효(孝) 제(悌) 충(忠) 신(信) 예(禮) 의(意) 염(廉) 치(恥) 등 유교적 윤리관을 압축한 효제도를 비롯한 문자도는 디자인적 요소가 강해 매우 현대적이다. (02)733-5877
문향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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