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년 동안 이집트를 통치하며 아들에게 권력을 물려줄 조짐마저 보이던 호스니 무바라크(76) 대통령이 야당이 주장한 대통령 복수후보·직선제 개헌안을 수용했다. 이집트 헌정사상 53년 만에 이뤄진 최초의 대통령 자유선거제도로 실제로 팔레스타인, 이라크를 거친 중동의 민주선거 바람이 홍해를 지나 이집트에까지 불어 닥칠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현행 헌법은 의회가 임기 6년의 단수후보를 지명해 국민 찬반투표에 부치도록 돼 있다. 무바라크 대통령은 26일 전국으로 방옅영된 텔레비전 연설을 통해 "누구나 대통령에 후보로 나올 수 있고 비밀투표로 다수 후보 중 한명을 대통령으로 선출 할 수 있다"며 "이를 위해 의회에 헌법개정을 지시했다"고 밝혔다. 그는 "9월로 예정된 대통령 선거 이전에 헌법 76조를 개헌하고 5월까지 국민투표에 부칠 것"이라며 "자유와 민주화를 위한 개혁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야당 및 시민단체들은 "산을 움직였다"며 환영하면서도 무늬 뿐인 직선제라며 강하게 비난했다. 오랜 독재정치로 제도권 야당이 유명무실해 자칫 선거가 정권에 면죄부만 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시위단체 ‘키파야’의 대변인 조지 이샤크는 "대통령 입후보 자격을 정당으로 제한하고 있는 것이 문제"라면서 "모든 국민이 출마할 수 있도록 허용해야 한다"고 비난했다. 아야 하기 때문에 반발을 사고 있다.
최근 이집트에서는 야당과 시민단체 등을 주축으로 대통령 직선제 개헌, 부자 권력세습 반대 등을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가 끊이질 않았다. 무바라크 대통령이 1981년 안와르 사다트 대통령이 암살됨에 따라 부통령으로서 권력을 승계한 이후 4차 연임을 통해 독재 장기집권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결정은 미국의 압력이 크게 작용했다. 신생 야당 지도자 아미나 누르가 창당신청서 위조혐의로 1월에 구금되자 "심각한 우려"를 표명했고, 이달 초에는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이 직접 나서 "미국의 우방인 이집트가 민주화의 새로운 방향을 보여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압박했다. 급기야 25일에는 다음주로 예정돼 있던 콘돌리사 라이스 국무장관의 이집트 방문을 취소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부시 정부의 자유 확산론이 중동에서부터 빛을 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선거와 이라크 총선이 무리 없이 끝나고 사우디 아라비아도 10일 전국 지방선거를 실시한 상태에서 이집트까지 민주화 걸음마를 시작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유력한 대항후보가 없는 상태에서 직선제 선거는 미국을 향한 무바라크 대통령의 정치적 쇼에 불과하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고성호기자 sungho@hk.c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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