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살아 본 사람들은 대부분 건강과 자유와 활기가 넘치는 미국사회를 부러워 한다. 그러나 이런 표면적 인상만으로 미국을 평가해서는 안 된다. 2차 대전 때 연합군 총사령관을 역임한 미국의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1961년 퇴임식에서 "미국은 군산복합체(military-industrial complex)의 영향력을 경계해야 한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요즘 미국을 보면 이 말이 실감난다. 대량살상무기를 갖고 있다는 거짓 이유와 예방적 공격이라는 엉터리 논리로 이라크를 침략했고, 소형 핵폭탄의 연구개발을 금지하는 스프래트-퍼스 법안을 2003년 폐기했으며, 국민감시와 출입국관리를 엄격히 하는 등 파쇼화 경향이 강화하고 있다. 이러한 경향에는 미국사회를 움직이는 군산복합체의 힘이 작용하고 있을 것이다. 군인과 재벌은 원래 전쟁을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 군인들은 전쟁이 나야 할 일이 있고, 돈벌이를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자본가들에게 전쟁은 손쉽게 큰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경제에는 도산과 실업이 대량으로 발생하는 불황이라는 구조적 병폐가 있다. 이는 마르크스가 아니더라도 영국의 고전파 경제학자인 맬서스 등 여러 사람들이 이미 200여 년 전에 지적했으며, 전쟁이 이에 대한 효과적 대책이라는 것도 일찍부터 많은 이들이 알고 있었다. 케인즈가 전쟁 대신에 정부의 적자재정을 통한 대형 공공사업이라는 평화적인 대안을 70여 년 전에 제시한 덕분에 2차 대전 이후 수십 년 동안 선진국들은 이 처방을 채택, 비교적 큰 전쟁 없이 불황을 해결하면서 번영을 구가해 왔다.
그러나 70년대 후반부터 케인즈의 방책도 점차 시행하기 어렵게 되었다. 적자재정으로 통화남발이 지속되면서 인플레가 점차 악화됐고, 경제에 내성이 생겨서 적자재정의 수요창출효과도 크게 감소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8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의 세계적 팽배로 인해 ‘재정적자는 악’이라는 생각이 종교적 신념처럼 널리 보급됨으로써 정부의 적자재정은 더욱 힘들게 되고, 그 결과로 군비확대와 전쟁이 효과적 방책으로 다시 등장하게 됐다. 1990년 소련의 붕괴는 군비확대의 명분을 빼앗아 감으로써 미국 대자본들을 어려운 처지에 빠지게 했으나 9.11 뉴욕 테러는 울고 싶은 이들의 뺨을 때려 준 꼴이 되었다.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새로운 전쟁 명분을 안겨 주었기 때문이다.
원래 다른 사람을 못 살게 구는 것은 힘센 자이고, 한 국가 내에서 가장 힘센 자는 국가 권력자들이다. 그러므로 국가권력의 한계를 법으로 명시해 그의 횡포를 막고자 하는 것이 민주국가 법의 근본취지다. 현대 자본주의사회에서는 정치권력자들보다 대자본가들의 힘이 더 센 것 같다. 돈이 무소불능인 자본주의사회에서 정치인은 대자본의 로비에 좌우되고, 언론은 광고주의 눈치를 보며, 학자들도 프로젝트 받기 위해 대기업의 눈 밖에 나지 않으려 한다. 현대 미국을 지배하는 것도 대자본이다. 미국과 영국의 이라크 침공에서 잘 드러난 바와 같이 군대는 대자본의 영향력 아래에 있는 정치인의 명령에 따를 뿐이다.
정부를 비판하는 것이 의회, 사법부, 언론 및 학계의 역할인데 현재 미국을 보면 이 기관들이 모두 대자본에 놀아나 비판 역할은 커녕, 오히려 북치고 장구치며 분위기 잡는 군악대 노릇을 하는 것 같다. 우리나라보다도 못한 것 같다. 민주주의는 정치선동가에게 놀아나는 참주정치로 타락하게 된다고 보았던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비관이 실감난다. 실패가 입증된 사회주의도 아니고, 어떻게 해야 좋을까. ‘만국의 시민단체여, 단결하라’가 한 해법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이근식 서울시립대 경제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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