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를 영토 분쟁 지역으로 만들지 않기 위해 일본에 소극 대처해온 정부의 대응 방식에 적지 않은 문제가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일본이 우리측 대응에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할말을 다하고 분쟁 수위를 점차 높여가고 있기 때문이다.
급기야 다카노 도시유키(高野紀元) 주한 일본대사가 23일 서울에서 버젓이 "독도는 일본 땅"이라고 강변하기에 이르렀다. 이는 지난해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가 한국의 독도 우표 발행을 언급하면서 독도 영유권을 주장한 것보다 훨씬 ‘자극적 언행’이다.
상황이 이처럼 악화하자 정부의 대처 방식에 대한 회의가 깊어질 수 밖에 없다. 그간 정부는 갈등 수위를 높이면 우리가 실효적으로 지배중인 독도가 영유권 분쟁지역으로 분류될 수 있다는 이유로 일본의 도발을 사실상 ‘무시’해 왔다.
분쟁의 존재를 인정할 경우 유엔헌장 제2조 등에 따라 분쟁의 평화적 해결 의무를 지고, 특히 일본과의 외교 교섭에 성실하게 응해야 하기 때문에 독도 분쟁의 공식화는 결국 우리의 국익을 해치게 된다는 게 외교통상부의 설명이었다.
이에대해 제성호 중앙대 교수는 "그렇다고 현재 분쟁이 없다고 자부할 수 있고, 국제사회가 그렇게 봐주는가 "라고 반문했다.
일본이 독도 관련 망언과 시마네(島根)현 조례 제정 등 모든 가용 수단을 총동원하면서 독도의 일본화를 시도하고 있는 점에 비추어보면 우리측의 무시 전략은 효율적인 제동장치가 못 된다는 것이다. 그간의 정부 대처가 먹혔더라면 ‘한일 우정의 해’인 올해 주한 일본대사마저 망언을 했을 리가 만무하다.
전문가들은 또 정부의 소극 대응이 독도에 대한 실효적 지배를 약화시키는 부작용을 초래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상면 서울대 교수는 "독도를 지나치게 분쟁화 할 필요는 없지만 우리의 주권적 권리는 온전하게 행사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경찰청장의 독도 순시 자제, 독도 입도 제한 등 분쟁 억지를 의식한 행위들이 오히려 독도에 대한 우리의 실효적 지배를 약화시키고 있다는 지적이다.
해방 이후 이승만 정부는 독도를 평화선에 포함시켜 일본 어선을 쫓아내는 등 실효적으로 독도를 완벽히 지배해 왔지만, 김대중 정부 이후 독도 인근 수역이 한일 공동관리구역으로 규정되는 등 실효적 지배가 약화된 상황에서 장기적으로 독도에 대한 실효적 지배를 강화해야 할 필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물론 정부의 현 대응 기조 전체가 잘못된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박춘호 국제해양법재판소 재판관은 "독도 문제가 분쟁화돼 국제사법재판소로 가야 하는 상황을 맞아서는 곤란하다"며 "목소리를 높일 경우 화를 자초할 수 있다"고 신중한 접근을 주문했다.
이를 종합해볼 때 지나치게 단선적이고 갈등 회피적인 정부의 현 대처 방식은 개선돼야 할 것으로 지적된다. 일본측 억지주장에 맞서 단호하고도 적절하게 대응하고, 독도의 실효적 지배를 강화하는 등의 종합적이고도 유연한 대응 방식이 모색될 필요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이영섭기자 younglee@hk.cokr
■ 日 현지 반응/ 日정부, 시마네현 조례 추진에 "노코멘트"
독도 문제에 대한 한국측의 반발과 강경 대응에 일본 정부는 곤혹스러운 표정이다. 일본측은 독도문제에 대한 대처방식이 정부차원에서 달라진 것은 없다고 설명하고 있다. 다카노 도시유키 대사의 발언도 질문에 대해 원론적 답변을 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지금까지 이번 사태에 대해 일본 정부가 도쿄(東京)에서 보인 반응은 지난 24일 정례 기자회견에서 정부 대변인 호소다 히로유키(細田博之) 관방장관이 기자들의 질문에 대답한 것이 유일하다. 호소다 장관은 "내 지역구이므로 시마네(島根) 현이나 의회가 강한 의지를 갖고 있는 것은 잘 안다"면서도 "정부로서는 코멘트를 피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또 "(독도문제가) 감정적 대립으로 발전하는 경향이 있다. 미래지향적으로 차분하게 대응해야만 한다"면서 시마네현과 경상북도 등 양국 지자체의 자제를 기대하기도 했다.
사실 시마네 현 의회의 조례안은 중앙정부에 대한 오랫동안의 ‘다케시마의 날’ 제정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은 데 불만을 갖고 추진된 측면이 있다. 우익 산케이(産經)신문은 26일 사설에서 "외무성이 더욱 주권의식을 가져야 한다"며 "영유권 확인운동이 시마네 현으로부터 전국에 퍼지기를 기대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아사히(朝日)신문이 27일 사설에서 "원래 양국의 주장이 다르기 때문에 지자체의 조례 정도로 크게 소란 피울 일은 아니다"고 양국 관계의 악화를 우려하는 등 일본 언론의 논조도 각양각색이다.
시마네 현 의회의 조례안 추진은 주요 언론에 보도되지도 않다가 한국의 반발로 처음 보도됐고 초점도 한국의 반발로 인한 외교문제화에 맞추어졌다. 시마네 현 의회의 주장과 움직임은 일본 언론이 보기에도 새로운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던 것으로 분석된다.
이런 경과를 살펴보면 일본 정부는 영토문제에 점점 강력한 요구를 하고 있는 일본 지자체와 국익상 외교를 악화시킬 수는 없는 한국 정부 사이에서 일종의 줄타기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도쿄=신윤석특파원 ysshin@hk.co.kr
■ "한국땅" 日·英지도 발견/1951년 샌프란시스코 조약 당시 마이니치 신문·英외무부서 작성
일본의 유력 언론과 영국 정부가 제2차 대전 전후 처리를 위한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 체결 당시 독도를 한국 영토로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자료가 잇따라 발굴됐다.
서울대 국제대학원 최장근 책임연구원은 일본 마이니치(每日)신문사가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 체결(1951년 9월 8일) 뒤인 1952년 조약의 내용을 설명하기 위해 발행한 책자인 ‘대일평화조약(對日平和條約)’에 독도가 일본 국경선 밖에 표시된 지도가 실려있다고 27일 밝혔다.
‘일본영역도(日本領域圖)’라는 이름의 이 지도는 일본과 한반도 사이의 남해와 동해 해역에 제주도, 대마도, 울릉도, 죽도(독도) 등 4개 섬을 표시한 뒤 국경선을 그어 제주도와 울릉도 죽도는 한국 영토로, 대마도는 일본 영토로 명확히 구분했다. 최 연구원은 "이 책자는 서울대 법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며 "일부 일본 학자들이 샌프란시스코 조약에 독도에 대한 영토 규정이 없다는 이유로 독도의 일본 편입을 주장하지만 이 지도로 볼 때 당시 일본은 샌프란시스코 조약 이후 독도가 한국 영토가 되었음을 분명히 인식했다"고 말했다.
샌프란시스코 조약에 서명한 49개 연합국 가운데 미국과 함께 주축이던 영국이 조약 체결 몇 달 전 미국에 제시한 조약 초안에 들어있는 지도에 독도가 한국 영토로 표시되어 있는 사실도 확인됐다.
목포대 역사문화학부 정병준 교수는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에 보관된 대일평화조약문서철에서 1951년 3월 영국이 샌프란시스코 조약의 초안에 쓰려고 준비한 지도를 발굴해 27일 공개했다. 영국 외무부 조사국에서 제작한 가로 82㎝, 세로 69㎝의 이 대형지도에도 역시 한반도와 일본 사이 해역에 제주도 대마도 울릉도 독도를 서양식이나 일본식으로 각각 ‘Quelpart’ ‘Tsusshima’ ‘Utsuryo Shima’ ‘Take Shima’라고 표기한 뒤 국경선을 그어 제주도와 울릉도 독도는 한국 영토로, 대마도는 일본 영토로 구분했다.
정 교수에 따르면 영국 정부는 샌프란시스코 회담을 앞두고 미국과는 별도로 3차에 걸친 독자적인 대일평화협상안을 만들어 1951년 4월 7일 미국에 최종 통보했다. 영국은 초안을 1951년 2월 28일 1차로 확정했다가 같은 해 3월 제2차 초안을 거쳐 3차 초안으로 완성했는데, 이 지도는 2, 3차 초안에 포함된 것이다. 정 교수는 "영국 당국이 ‘매우 개략적인 예비 초안’이라고 설명한 제1차 초안에는 독도는 물론 울릉도와 제주도까지 일본령에 포함돼 있었지만 그 이후 초안부터 모두 한국 영토로 바꿔 표시했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또 샌프란시스코 회담 직전 미 국무부 정보조사국이 독도는 한국 영토이며 조약문에 독도가 한국령이라는 문구를 덧붙여야 한다는 견해를 밝혔던 사실도 NARA 보관 문서에서 확인했다. 정보조사국 지리전문가인 보그스는 국무부 동아시아에서 샌프란시스코 회담을 준비하던 피어리가 조약 체결 이후 영토분쟁 가능성이 있는 지역을 묻자, 1951년 7월 13일자로 답하면서 ‘일본은 한국의 독립을 승인하며 제주도와 거문도, 울릉도 및 독도(추가 부분)를 포함해 한국에 대한 모든 권리와 권원(權原)과 청구를 포기한다’고 명시하도록 요구했다. 하지만 결국 체결 조약문에는 독도를 한국령으로 명시하는 문구가 빠지고 말았으며, 여기에는 일본의 집요한 로비가 큰 몫을 했다는 분석이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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