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세기 신라 왕실과 정치를 치마끈 풀고 죄듯 희롱한 여인 미실(549~606). 김별아씨의 장편소설로 부활한 그녀가 이제 이 시대 제도와 관습 성모럴을 테러한다. 권력과 애욕의 색광으로서의 낡은 이미지를 벗어 던진 그녀를 만나는 일은, 그래서 낯설고 두려웠다.
미실은 ‘왕의 여자’로 태어났다. 전래의 미태술 방중술을 익혀 일생동안 왕을 색(色)으로 섬겨야 하는 모계혈통 색공지신(色供之臣). 절대권력 앞에 그들의 색은 생존의 근거였고 삶의 의미였다. 하지만 황제의 사랑은 ‘봄의 햇빛 같은 것’ ‘한 때 세상을 덮어 찬란하게 빛나되 곧 스러지고야 마는 부질없는 계절의 온기’ 아니던가. 그녀들은 ‘힘을 가진 채 외롭거나, 힘을 갖지 못한 채 더욱 외로운’ 존재였다.
하지만 그녀는 특별했다. 태(態)는 아름다웠고, 기(技)는 현묘했다. 열 네 살에 황후의 아들 세종과 혼인한 이래 진흥 진지 진평 3대의 왕과 왕자들, 화랑 사다함을 비롯한 숱한 호걸 영웅들을 미색으로 녹였고 왕실권력을 품었다. 당대의 가치관 ‘신국(神國)의 도(道)’는 성적 억압을 몰랐다. 터부와 해방의 관념 자체를 넘어선 자유로운 성의 세계에서는 부모의 연인이든, 배나 씨가 다른 형제든 나누어 누리지 못할 까닭이 없었다. 그녀의 성은 때로는 자애로웠고, 때로는 가차없었으며, 때로는 혼몽했다. 하지만 항상 상대를 지배했다. 그 성은 ‘불완전에 익숙하고서야 쉽게 상상할 수 없는, 인간이 지어낼 수 없는 유일무이한 완전함의 경지’였고, 사내들을 굴복시키는 ‘악마적 쾌감’이었으며, ‘모든 것이 비워지는 듯 충만해 생심을 끌어낼 필요도 없이 절로 마음이 열리’는 경지였다. ‘그는 한없이 환하고 다사로운 빛을 보았다. 빛을 향해 온몸을 늘여 발돋움했다. 손끝에 잡힐 듯 말 듯 안타까웠던 빛이 눈부시게 작열하는 동안, 동륜은 몸을 떨며 파정하였다.’ ‘(사내들에게) 그녀만큼 잔인하고 아름다운 적(敵)은 없었다.’
작가는 신라 김대문의 ‘화랑세기’가 기록한 미실의 사건을 고대사료의 건조한 문장으로, 작가의 상상력이 더듬어낸 그의 내면을 농밀하고 함축적인 시적 문장으로 거침없이 이어간다. 중국의 측천무후(624~705)가 성을 매개로 절대권력의 고독한 자유를 추구했다면, 미실의 성은 인간 본성의 자유를 향한 갈구인 동시에 견성(見性)의 현재태였다. ‘낮거나 높고, 천하거나 고상한 세상만사가 모두 성애 안에 있었다. 성애 자체가 하나의 완전한 세상이었다.’
작가는, 권력자 미실이 성의 정치를 통해 구현한 그 화합의 세상을 ‘어머니의 법칙’이 지배하는 세상이라고 썼다. 서사의 호방함에 비해 극적인 꺾임과 출렁임은 덜하지만, 화랑의 남성적 세계를 비롯한 당대의 풍속과 문화를 적절히 배치함으로써 읽는 재미와 긴장을 유지시킨다. 현대의 ‘성(sex)과 성(gender)의 중층적 고리들을 겨냥한 미실의 테러를 마주하는 일은, 그래서 짜릿하고 저릿한 것이었다. 작가에게 고료가 1억원인 ‘제1회 세계문학상’ 당선의 영예를 안긴 작품이기도 하다.
최윤필기자 walden@hk.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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