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가라, 두 깃발 사이/ 우리 땅 어디에도/ 있지 않았던 그대여,/ 그대가 누구인지 몰라도 그대를 사랑한다.’(‘그대가 누구인지 몰라도 그대를 사랑한다’ 에서)
신대철 시인은 군복무시절 최전방 GP 소대장으로 근무하며 공작원의 북파를 거든 이력이 있다. 세 번째 시집 ‘그대가 누구인지 몰라도 그대를 사랑한다’에서 그는 그 가슴 저린 기억으로 한반도 현대사의 아픈 상처를 쓰다듬는다.
‘마지막 그분’은 그 때 만난 북파공작원의 마지막 모습을 담은 작품이다. ‘…작전에 돌입하기 직전/ 손마디를 하나하나 맞추며/ 수고스럽지만 하다가/ 다시 만나겠지요 하던 그분/ 숨소리 짜릿짜릿하던 그 순간에/ 무슨 말을 하려다 그만두었을까/ 그게 그분의 마지막 말일 수도 있는데/ 나는 왜 가만히 듣고만 있었을까…’
그는 당시의 기억을 혼신을 다해 대면한다. 표제작은 북파됐다가 임무를 포기하고 귀환한 공작원을 맞아들이던 어느 날의 부대끼던 내면의 증언이다. ‘…지지난밤/ 불붙은 소나기에 머리 데고 오늘은 벙커 울리는 발자국 소리에 가슴 데는 그대,/ 그러나 살아서는 돌아갈 데가 없는가/ 살아서는 혼도 지닐 수 없는가…’
시인은 몽골 시베리아 알래스카 등 오지를 일삼아 다녔다고 한다. 그 여정은 어쩌면 심중의 상처들을 다스리기 위한 방황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오지에서조차 시인은 한반도와, 그 현대사의 아픔과 조우한다. 몽골의 북한 벌목공을 만나 ‘뭉치지 않고 흩어지지 않고 뒤엉키는 핏줄’(‘검은 눈발’)을 절감하고, 시베리아의 오로라 속에서는 ‘악몽 속의 얼굴들’(‘오로라’)을 떠올린다. 시집에는 아버지 없이 할머니의 노동에 얹혀 화전민으로 살아야 했던, ‘봄도 사람도 다 잊’(‘패랭이꽃’)고 살아야 했던 유년의 아픔도 진하게 배어있다.
첫 시집 이후 2000년까지 23년의 긴 침묵의 시간을 오롯이 감당했던 시인은 이번 시집을 두고 "오랫동안 아물지 않던 긴 몸부림의 흔적"이라고 적었다.
최윤필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