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수도권 소재 공기업과 정부투자기관 등 공공기관을 대거 지방 이전하기로 하면서 전국의 각 지자체는 ‘알토란’ 같은 이들 공공기관의 유치를 위해 총력을 쏟고 있다. 정부가 공공기관 이전지에 대해서 각종 특혜를 주기로 한데다, 공공기관 유치가 지역경제 활성화와 직결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특히 몇몇 대형 공공기관은 치열한 유치 경쟁의 대상이 되고 있어 자칫 새로운 지역 갈등을 야기할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국가균형발전위원회가 24일 국회에 보고한 공공기관 이전 방안에 따르면 지방 이전 대상은 모두 344개 기관 중 190여개에 달한다. 최종 이전 기관은 3월 중 선정되고, 7월까지 이전 지역이 결정되며, 이전지를 중심으로 양질의 주거 교육 문화 여가시설을 갖춘 ‘혁신도시’ 건설계획을 내년말까지 수립한 뒤, 2012년까지 이전과 혁신도시 건설을 마친다는 계획이다.
한국전력, 주택공사, 토지공사 등 이전의 파급효과가 큰 대형 공공기관은 수도권과 대전을 제외한 12개 광역 시·도에 1개씩 고르게 배치된다. 나머지 기관들도 각 광역지자체마다 평균 10여개씩 이전될 예정이다. 직원 1,100여 명?D에 연간 매출액 29조5,000억원인 한국전력, 800여명 직원에 연매출 6조원인 토지공사 등 일자리 창출 효과가 크고 지역 발전에 도움이 되는 기관들이 지자체가 노리는 주요 ‘사냥감’ 들이다.
정부의 균형발전 로드맵에서 오히려 역차별을 받고 있다고 여기는 부산시는 이번에 이전되는 공공기관 유치에 가장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부산시는 한국전력, 토지공사 등 17개 기관의 이전 유치를 적극 희망한다고 천명했다. 부산시 관계자는 "지역연관성 및 이전효과가 높은 관광공사, 영화진흥위원회, 예금보험공사 등도 유치를 위해 지역 정치권과 연계한 공동 대응책을 펼칠 것"이라고 말했다. 부산시는 이전 유인책으로 부지 할인, 할부 매각, 지방세 감면 등 파격적인 정책도 마련중이다.
대구시와 경북도는 ‘합종연횡’을 시도하고 나서 눈길을 끈다. 이미 산업단지로 자리잡은 두 지역이 공공기관의 다량 유치를 이뤄내면 부산권을 앞서는 발판을 마련할 수 있다는 복안이다. 양 시·도는 최근 민·관 합동으로 ‘공공기관 유치 추진위원회’를 구성했다. 경북도는 "한국전력 등 정보통신산업 관련 공공기관 유치를 대구시와 함께 추진할 것"이라며 "나아가 도로공사, 주택공사 등 11개 개별 기관을 지역으로 이전시켜 동해안을 포함한 U자형 국토 균형개발에 박차를 가하겠다"고 설명했다.
호남 지자체들은 공공기관 유치를 통해 전국에 분산된 국가 핵심 코어(Core)로 등장하겠다는 야심이다. 전북도는 영남보다 상대적으로 낙후된 산업을 보강하기 위해 향후 발전 가능성이 큰 에너지, 생명과학 관련 공공기관 유치를 목표로 한다고 밝혔다. 도 관계자는 "정부 부처가 이전하는 충남과 지리적으로 가깝기 때문에 영향력 있는 대형기관들이 전북을 매력적으로 보고 있다" 며 "모든 지자체가 유치를 원하고 있는 한국전력, 도로공사 등 외에 전북은 이들 분야 기관을 전략적으로 유치할 것"이라고 전했다. 전남도도 농업, 에너지, 정보통신 3개 분야 23개의 희망 공공기관을 압축했다.
하지만 지자체들의 이러한 바람과는 달리 정부는 지역갈등 심화 등의 부작용을 우려해 ‘공식적’인 유치전을 금하고 있다. 정부가 직접 지역 낙후도를 고려해 적절한 공공기관들을 지자체 별로 배분하겠다는 것이다. 강원도 신분권담당관실은 "정부가 지난해말 공공기관 유치를 자제하라는 공문을 각 지자체에 보냈다"며 "이를 어길 경우 이전하는 공공기관 배분 때 불이익을 준다고 해 지자체 입장에서는 매우 난감한 입장"이라고 말했다.
전준호기자 jhjun@hk.co.kr
안경호기자 khan@hk.co.kr
김종한기자 tellme@hk.co.kr
■ 한전·도공·토공·주공·가스공/ "빅 5를 잡아라"
지역에 공공기관을 유치하기 위한 정치권의 발걸음도 빨라지고 있다. 유치 실적이 곧바로 지역구 표심과 직결될 수 밖에 없어 물밑 유치전이 벌써부터 치열하다. 특히 한국전력, 도로공사, 토지공사, 주택공사, 가스공사 등 소위 빅5를 잡기 위한 경쟁은 불꽃이 튈 전망이다.
우리당 양형일 의원 등 광주 지역 의원들은 28일 광주에서 강동석 건교부장관 초청 강연회를 개최한 뒤 한전, 토공, 도공 등의 이전을 요청할 예정이다. 그 동안 한전과 토공 유치에 주력해왔던 우리당 조경태 윤원호 의원, 한나라당 안경률 의원 등 부산 지역 의원들도 성경륭 국가균형발전위원장 등 관계 기관장 초청계획을 부지런히 마련하고 있다. 우리당의 한 관계자는 "지역 발전을 위해 당을 떠나 같은 지역 의원들이 협력하는 방안도 논의되고 있다"고 전했다.
공공기관 이전 문제를 다룰 국회 신행정수도 후속대책특위 내 지역균형발전소위의 역할에도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공공기관 이전은 국가균형발전위가 결정할 사안으로, 지역균형발전소위는 국가균형발전위와 이전에 대한 원칙과 기준을 논의할 예정이다. 하지만 소위의 논의과정에서 구체적 이전 방안이 논의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 갈등과 정쟁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관측이다. 한 의원은 "특위가 지자체와 의원들의 로비 창구로 전락할 가능성도 있다"고 우려했다.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 수도권 지자체선 "세수 감소" 우려/ 대신 ‘민간기업 유치’ 나서
현재 대부분의 공공기관이 위치해 있는 수도권 지자체들은 구체적으로 이전하는 공공기관의 시·도별 배치방안이 발표되는 내달 이후에나 구체적 대책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이다. 토지공사, 주택공사, 가스공사 등 관내에 상당수의 대규모 공공기관을 두고 있는 경기 성남시의 경우 기관 이전으로 인한 세수(稅收) 감소 등을 우려하면서, 대안으로 민간기업을 유치하는데 전력투구할 방침이다.
성남시 관계자는 "공공기관 이전은 중앙정부의 정책인만큼 거스를 수 없는 대세라고 본다"며 "기업지원과, 지역경제과를 중심으로 분당과 판교신도시에 조성되는 벤처단지에 기업연구센터 등을 유치해 지역경제에 미치는 악영향을 최대한 줄여나갈 방침"이라고 말했다.
경기도는 당장 공공기관 이전 대책보다는 정부 부처 이전으로 공동화가 우려되는 과천 지역에 대한 대책 수립에 부심하고 있다.
서울과 수도권의 이전 예정 공공기관들은 정부계획 발표를 기다리며 다른 공공기관들의 움직임을 관망중인 단계다. ‘개별이전기관’으로 분류된 서울 서초구 염곡동 한국소비자보호원 관계자는 "지난해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 위헌판결 이후 공공기관 이전계획도 당분간 보류된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이전대상으로 꼽혀 다소 당황스럽다"며 "정부의 후속 발표 내용을 보고 대책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대규모기관’으로 분류돼 이전이 확실한 경기 성남시 분당구의 한국토지공사는 이미 지난해 상반기에 구성한 신국토기획단을 중심으로 발빠르게 대책 마련에 들어갔다. 토지공사 관계자는 "정부 계획이 나오는 대로 노사협의를 시작하고 이전대상 후보지역 기초조사 등을 시작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대상 기관들과 충분한 상의 없이 정부가 덜컥덜컥 관련 방안을 내놓음으로써 야기되는 혼란도 문제다. 도로공사는 24일에야 부랴부랴 ‘이전을 위한 특별 추진팀’을 꾸렸다. 도로공사 관계자는 "정부가 내달 중 지방으로 내려갈 공공기관을 발표하겠다고 갑자기 밝히는 바람에 대책 마련이 발등의 불로 떨어졌다"고 말했다.
이왕구기자 fab4@hk.co.kr
김신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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