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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 조선의 亡國·일제의 敗亡 막후에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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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 조선의 亡國·일제의 敗亡 막후에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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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2.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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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사조약 100주년, 광복 60주년을 맞아 한일 근현대사, 그 가운데 대한제국 망국의 역사와 일본 제국주의 침략 전쟁을 재조명한 책들이 잇따라 출간되고 있다.

‘을사늑약 1905, 그 끝나지 않은 백년’은 1905년 을사조약 체결로 외교권을 박탈당하는 과정을 중심으로 1876년 강화도조약에서 1910년 한일합방으로 나라를 송두리째 뺏길 때까지의 전말을 소상히 전한다. 태평양전쟁을 중심으로 일본 제국 패망의 역사를 집중 조명한 ‘일본제국 흥망사’는 광기 들렸다고 해야 할 당시 일본 군부의 행태와 천황의 전쟁 책임을 되묻고 있다. 딱히 새로운 발굴이나 해석을 담았달 것까지는 없지만 두 책은 여러 일화를 곁들여 당시의 정세와 의사 결정 과정을 흥미진진하게 보여주는 점이 큰 매력이다.

일왕 특사 자격의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는 을사조약 체결 이틀 전인 1905년 11월 15일 오후 3시 30분 단독으로 광무황제(고종)와 만나 일본 내각의 결의에 따라 이미 만들어 온 문건을 내놓고 받아들일 것을 강요했다. 외교권을 다 가져가겠다는 일본의 야욕이 한 눈에 보이는 그 문건을 본 뒤 "실제는 일본이 취하되 형식만이라도 대한제국이 외교권을 가진 것처럼 보이도록 해달라"고 청하는 광무황제가 애처로워 보이기조차 한다.

하지만 이토의 답은 분명했다. "결코 변경할 수 없는 제국 정부의 확정된 결정입니다. …수락하든 거부하든 폐하의 자유지만, 이미 거부해도 제국 정부가 그렇게 하기로 결정을 내린 사항입니다." 이런 걸 협박이라고 할 것이다. 김삼웅 독립기념관장은 ‘을사늑약 1905, 그 끝나지 않은 백년’에서 여러 한일 조약의 일본 측 주역들이 남긴 문건이나 회고록 등 자료를 참고해 당시 상황을 박진감 있게 만든 한 편의 기록영화처럼 보여준다.

대한제국 망국사라고 할 수 있는 ‘을사늑약 1905, 그 끝나지 않은 백년’을 쓰면서 그는 ‘역사의식이 투철한 사람’들은 을사조약을 ‘늑약(勒約)’으로 부른다고 특별히 강조했다. "사전적으로 조약을 국가간의 권리와 의무가 국가간의 합의에 따라 법적 구속을 받도록 규정하는 행위라고 할 때 이 기준으로 보면 을사조약은 국가간의 합의가 아니라 일본의 강제에 따라 체결된 까닭에 늑약이라고 하는 편이 정확하다."

을사조약 체결 당일(11월 17일) 어전회의에서 을사오적의 의사를 앞세워 조약을 통과시키려는 이토의 작태에 분노한 총리대신 한규설이 졸도하는 장면 등 잘 알려지지 않았던 이야기들과 저자 특유의 강단 있는 문장이 읽는 재미를 더한다.

이창위 대전대 법학부 교수가 쓴 ‘일본제국 흥망사’에서는 1904년 러일전쟁 승리 이후 브레이크 없는 기관차처럼 팽창일로를 걷던 일제가 결국 미국과의 대결이라는 악수를 두고 패망하는 과정이 잘 드러나 있다. 진주만 공습, 미드웨이 해전, 오키나와 전투, 가미카제 등 태평양전황을 보여주면서 저자는 특히 일본군의 과도한 정신주의, 병리적인 군사문화를 드러내는 데 초점을 두었다. 사무라이 정신을 계승이라도 하듯 군인 행동규범인 ‘군인칙유(軍人勅諭)’ ‘전진훈(戰陳訓)’ 등에서 천왕을 위해 목숨을 버릴 수 있다고 한 비정상은 태평양전쟁 과정에서 군부가 천황의 권위를 이용하여 권력을 행사하는 데로까지 발전했다.

미국의 원폭 투하 이후 천황의 항복 결정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근위대 일부 병사들이 8월 14일 이른바 ‘옥음(玉音)방송’ 녹음 테이프를 탈취하려던 사건, 미일의 암호 해독과 심리전 등 여러 일화들이 재미나다. 영어와 일본어 번역이 불러온 오해와 마찰 등을 소개하면서 그런 오해가 없었더라면 세계사의 흐름이 바뀌었을 것이라고 가정해본 것도 흥미롭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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