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는 말처럼 우리가 흔히 보는 유적의 해설은 상당 부분 지배자의 주관적인 시각을 반영한 것이다. 드넓은 미국을 무대로 이런 ‘껍데기’를 벗겨보려는 용기 있고 엄청난 시도를 한 사람이 있다.
미국의 저술가 제임스 로웬은 1994년부터 98년까지 미국의 가장 서쪽 주인 알래스카에서 맨 동쪽인 메인까지 돌며 기념비 동상 가옥 요새 선박 기념물 현판 사적지 등 역사와 현장이 결합된 95곳의 사적지를 살폈다. 그리고 거기서 잘못 쓰인 역사와 거짓말을 하나하나 잡아내 ‘미국의 거짓말’(김한영 옮김·갑인공방 발행)이라는 두툼한 책을 썼다.
로웬이 꼽는 가장 심각한 왜곡은 인종 차별이다. 인디언과 흑인은 어느 곳의 동상에서나 항상 백인 아래 무릎을 꿇고 있는 자세로만 그려진다. 기념물을 세우고 역사를 기록하는 것이 모두 백인이었기 때문이다. 전쟁 박물관이 전쟁의 참혹한 실상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그 참상을 도리어 순화하고 있는 것도 문제로 지적했다. 이런 박물관이 전쟁에 사용된 무기를 보여주고 보존하는 데 더 비중을 두는 건 미국만의 일은 아니다. 미국 역사교과서 12종을 뒤져 오류를 밝혀낸 ‘선생님이 가르쳐준 거짓말’이라는 책으로 미국 도서상, 반인종차별 학문을 위한 올리버 크롬웰콕스상을 받은 저자의 비판의식이 돋보이는 책이다.
김범수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