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1년 2월25일 엘리자베스1세의 총애를 받던 에식스 백작 로버트 데버루가 반역죄로 참수됐다. 35세였다. 그가 죽은 뒤 여왕은 한동안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는 의회 연설을 통해 70 평생을 되돌아보며, 자신은 한 남자가 아니라 잉글랜드왕국과 결혼했다고 선언했다. 군주와 국가의 관계를 요약한 여왕의 이 멋진 발언은 그의 진정한 사랑이 에식스 백작이었다는 사실을 부정하려는 안간힘의 소산이었는지도 모른다. 두 해 뒤 여왕을 삶을 마감했다.
엘리자베스1세는 일생을 처녀로 살았다. 그녀의 치세에 개척된 아메리카의 한 지역은 여왕을 기려 버지니아(처녀의 땅)로 명명됐다. 그러나 그녀가 연정을 품은 남자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녀는 처음 레스터 백작 로버트 더들리를 사랑했지만, 남편과 권력을 나누기 싫어 결혼을 포기했다. 그 뒤엔 근위대장 월터 롤리와 사랑에 빠졌지만, 역시 결혼을 결행하지는 못했다. 권력욕이 늘 연정보다 컸다는 점에서, 자신이 잉글랜드와 결혼했다는 여왕의 선언에는 그 나름의 진실이 있었다. 그러나 엘리자베스1세는 레스터 백작이 한 미망인과 몰래 결혼하자 분노에 몸을 떨었고, 월터 롤리가 한눈을 파는 듯하자 그를 잠시 투옥하기까지 했다. 그녀는 적어도 질투를 할 줄 아는 연인이었다.
엘리자베스1세의 마지막 사랑이었던 에식스 백작은 첫 사랑 로버트 더들리의 의붓아들이다. 여왕의 총애를 한 몸에 받던 그는 아일랜드 반란 진압에 실패한 데다 자신의 비밀결혼이 여왕에게 알려지자, 스코틀랜드 왕 제임스6세와 짜고 반란을 꾀했다. 반란 음모는 분쇄됐고, 여왕은 많은 망설임 끝에 이 배신자를 처형했다. 두 해 뒤 여왕이 죽자, 스코틀랜드의 제임스6세가 제임스1세라는 이름으로 잉글랜드 왕이 되었다. 그녀의 사랑이 끝나면서 그녀의 삶도 끝났고, 그녀의 죽음과 함께 튜더왕조도 끝났다.
고종석 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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