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바닷가 작은 학교에서 교사근무를 시작해 1993년 천안여고, 천안중앙고를 거쳐 현재 근무하는 학교에 이르기까지 10여 년간 테니스 선수들을 지도해오고 있다. 선수들과 같이 생활하며 그들과 함께 어려움을 극복해가며 맛보았던 승리의 순간들, 그때 그때의 숱한 에피소드가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모두 평생 기억하고 싶은 소중한 장면들이다.
운동 하기가 싫어 매일 투정을 부리고, 기회만 있으면 어떻게든 학교를 이탈해 도망 다니는 학생을 찾아 헤맨 시간이 얼마였던가. 밤낮으로 아이들이 떠나버리지 않았을까 하는 걱정에 합숙소를 찾아가 잠자는 학생의 얼굴을 물끄러미 확인한 다음에야 안도의 숨을 내쉰 날은 얼마였던가. 합숙소가 싫어 떠나려 하는 아이들은 아예 집으로 데려와 함께 기거하며 달랬던 날은 또 얼마였던가. 이제는 어엿한 어른이 된 제자들과 이런 추억을 나누면 밤이 지새는 줄을 모른다. 제자들 중 몇몇은 나 처럼 학생들을 가르치는 체육선생님이 돼 있다. 아마도 이제 그들은 지난 시절의 내 마음을 알 것이라 생각하면 감개가 무량해진다.
선수들의 합숙 생활은 힘들다. 합숙소는 가정처럼 필요를 충족시켜주기 어렵기 때문이다. 감독교사는 아버지요, 코치선생님은 어머니와 같은 역할을 한다지만 그들도 비용, 시설이 만족스럽지 못한 만큼 어려운 살림을 떠맡은 가장처럼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밤늦게까지 훈련을 마치고 들어와도 집처럼 밥이 차려져 있는 도 아니고, 때로는 한밤중 몸이 아픈 선수가 생기면 등에 업고 병원 응급실로 뛰어야 한다. 몸에 탈이 많고 갑정이 섬세한 여학생들에게는 기능 훈련 이상으로 감정을 통제하는 훈련이 중요하다. 하루가 잘 지나가면 그저 아이들과 모든 이들이 고마울 따름이다.
나는 눈을 싫어한다. 어릴 적부터 그랬다. 일찌감치 테니스를 시작했기 때문에 눈이 오면 어김없이 테니스코트의 눈을 치우는데 종일 매달려야 했기 때문이다. 지금도 눈이 내리면 만사 제치고 코트로 달려간다. 지난해 3월 초 100년만의 폭설은 전국의 고속도로를 마비시켰지만, 나와 아이들은 꼬박 나흘간 몸서리칠 만큼 눈을 치워야 했다. 그래서 눈이 와서 즐거워하는 사람, 눈이 오면 좋겠다는 사람만 보면 괜한 심술이 난다.
오늘처럼 눈 내리는 날이면 이런저런 추억에 젖는다. 밤낮없이 선수들 지도에 여념이 없는 일선 체육선생님, 코치선생님들 모두 힘내시기를.
길기태·충남 조치원여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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