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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원의 길위의 이야기] 보름날 더위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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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원의 길위의 이야기] 보름날 더위팔기

입력
2005.02.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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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우리도 형제가 많았고, 작은집도 형제가 많았다. 해마다 정월 보름날이 되면 형제간에 또 당숙과 조카들 간에 더위팔기 난타전이 벌어졌다.

누가 불러도 대답하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무심결에 대답하게 되고, 그래서 남의 더위를 떠맡게 되면 그게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아도 어린 마음에 여간 자존심 상하는 일이 아니었다. 더위를 사고팔다가 형제간에 다투게 되는 것도 다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형은 동생이 대답하지 않았는데도 대답했다고 박박 우기고, 동생은 분명 대답해놓고도 안 했다고 박박 우기다가 싸움이 되어 어른들에게 야단을 맞곤 했다.

그런 중에도 우리가 함부로 더위를 팔아서는 안 되는 사람이 있었다. 집안에 농사일을 도맡아 해줄 일꾼을 두던 시절이었는데, 할아버지가 일꾼 아저씨들을 상대로는 더위를 팔지 못하게 했다. 왜냐면 그 아저씨들은 한여름에도 논밭에 나가 일을 해야 할 사람들인데, 그늘에서 노는 이들의 더위까지 맡으면 안 되기 때문이었다.

어제 모처럼만에 형제들에게 전화로 더위를 팔았다. 올 여름 엄청 덥다는데, 우리 형제들 내 더위까지 떠맡아 꽤나 고생하겠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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