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좋고 물 좋고 꽃 좋은 지리산 남쪽 화개골. 쌍계사 금당선원은 섬진강변 화개장터를 지나 삼신봉 아래 산 자락에 고즈넉히 자리잡고 있다.
동안거 해제일인 23일 금당선원의 스님들도 3개월 간의 참선수행을 마무리했다. 대웅전 옆 적묵당을 끼고 돌면 계곡 위 건너편에 금당선원이 있다. 추사가 쓴 ‘세계일화 조종육엽(世界一花 祖宗六葉)’이란 편액이 이 선원의 무게를 말해준다. 722년 김대비와 삼법, 두 스님이 중국 선법(禪法)의 중흥조 육조 혜능 대사의 정상(頂相:머리)을 이 곳에 모셨다는 ‘육조정상 해동 봉안설’의 근원지가 된 곳이다. 금당 안에는 불상 대신 육조정상이 봉안된 탑이 모셔져 있다. 한국 불교의 선맥은 혜능 스님에게서 비롯됐다. 혜능 스님이 열반한 음력 8월이면 쌍계사 주변은 백일홍과 상사초(길상초)가 흐드러지게 만발한다.
금당을 좌우로 동방장(東方丈)과 서방장(西方丈)으로 나뉘어 있는 선방에서는 이번 한철 16명의 스님들이 참선 수행을 했다. 결제 때와 음력 보름마다 있는 조실 고산( )스님의 법문을 경책으로 삼아 새벽 3시부터 저녁 9시까지 정진을 거듭했다. 고산 스님은 특히 혼침과 잠자는 것과 망상을 일으키는 것이 참선 수행자의 병통임을 경계했다고 했다. "걸어갈 때도, 밥 먹을 때도, 앉을 때도 이 놈이 무엇인고 하고 화두를 들면 화두 아닌 것이 없어요. 욕심 보따리를 앞세워 참선하면 망상이 많아요. 망상이야 덤비든 말든 그대로 두고 화두만 들면 돼요."
두 선방은 특징이 있다. 동방장은 편안하게 수행할 수 있는 반면, 서방장은 기운이 솟구쳐 눕거나 졸 수가 없다고 한다. 그래서 서방장은 24시간 잠을 자지 않고 수행하는 곳이며, 한때 "서방장에서 한 철만 수행하면 한 소식" 한다는 얘기가 있었다. 지리산의 힘찬 기운을 받은 탓일까. 경허 용성 한암 만공 효봉 청담 금오 스님 등 큰 스님들도 이 곳에서 수행을 하며 한 소식을 했다고 전한다.
선방 안거 10년째인 부천 석왕사의 능원 스님은 "금당선원은 편안하면서도 처지지 않는 것이 특징"이라면서 "동방장에서 편안하게 수행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날도 스님들은 새벽 3시에 일어나 마지막 참선 수행을 했다. 오전 10시 대웅전에서 조실스님의 해제 법문을 들은 스님들은 천왕문과 금강문, 쌍계교를 건너 일주문 밖으로 나섰다.
"보리본무수(菩提本無樹) 명경역무대(明鏡亦無臺) 불성상청정(佛性常淸淨) 하처유진애(何處有塵埃)"(보리는 본래 나무가 없고 명경 역시 받침이 없다 불성은 항상 청정하거늘 어디에 티끌이 있으리요) 금당에 걸려있는 혜능 스님의 오도송이 만행을 떠나는 스님들을 일깨운다.
하동=글·사진 남경욱기자 kwnam@hk.co.kr
■ 쌍계사 조실 고산 스님/"수행자도 생활인도 꾸준함이 지름길"
"시종여일(始終如一)하게 꾸준하게 하는 것이 지름길입니다."
동안거 해제를 하루 앞둔 22일 밤 쌍계사 금당선원 아래 방장실. 조실 고산( ·사진) 스님은 선(禪) 수행의 비결을 이렇게 들려주었다. "부처님의 ‘중도제일’이라는 말씀처럼 앞서지도 말고 뒤처지지도 말고 밀고 나가면 자연히 견성의 길로 들어설 것입니다."
스님은 이번 동안거 기간에 여러 차례 법문을 통해 수좌들에게 이렇게 당부했다고 했다. "다들 얼마나 공부를 잘 했는지는 알 수 없지요. 다만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꾸준히 해나가면 시절 인연이 도래하고 자연히 견성오도(見性悟道)하게 되는 것이 참선 수행입니다."
빨리 견성해야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탐심(貪心)이고, 나는 왜 이렇게 공부가 안 되나 하고 생각하는 것은 진심(瞋心)이며, 나보다 못한 사람도 있는데 이 정도면 되겠지 하는 것은 치심(癡心)입니다. 이 탐진치를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고산 스님은 깨달음을 얻겠다고 발심 출가한 것이 아니라 열세 살 때 돌아가신 어머니를 만날 수 있다는 은사 스님의 말을 믿고 입산한 것이 출가의 동기라고 했다. 그로부터 60년에 가까운 긴 세월 동안 스님은 새벽 예불을 거른 적이 없다고 했다. 스님은 남다른 수행 노력으로 산문에서 덕망이 높아 조계종이 어려울 때마다 총무원장에 천거되곤 했다. 고산 스님은 은사 동산스님에게 참선을 배운 뒤, 선교(禪敎)에 능통한 대강백 고뵨봉 스님에게 15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경전을 배워 전강을 받았고, 석암 스님으로부터 율맥을 이은 율사이기도 하다. 스님은 화두 참구를 통해 몇 차례나 마음이 환히 밝아지며 무릎을 치는 경계를 맛보았다고 했다.
세상이 변했다곤 하지만 참선 공부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다를 바가 없다고 스님은 말했다. "옛날에는 걸어 다니면서 선지식들을 찾아 공부했는데 요즘은 차 타고 다니는 것 정도가 달라졌을 뿐이지요. 공부는 근기(根機)에 따라 하는 것인데 옛날이나 지금이나 상근기(上根機)는 있고, 열심히 용맹 정진하는 스님들은 있어요. 도인이라야 도인을 알아보는 법이요."
고산 스님은 1998년 조계사 폭력사태 후 총무원장으로 추대돼 종단을 수습한 뒤 9개월 여 만에 훌훌 떨치고 쌍계사로 내려와 후학들을 지도해왔다. 스님은 쌍계사를 20여년에 걸쳐 중창했고 부산 혜원정사, 부천 석왕사, 통영 연화사를 창건하는 등 불사도 여럿 했다.
"모두가 욕심을 버리고 부지런히 노력하면 잘 살고, 게으름을 피우면 못 살아요. 모두들 잘 살도록 노력하세요." 스님은 정치인들에게 한마디 하겠다고 했다. "잘잘못을 가리게 되면 시비가 끝도 없으니, 과거사는 묻지 말고 앞으로 해나갈 것을 논의하면 국가가 발전할 것입니다."
스님은 생활인들에게 주는 말도 잊지 않았다. "다른 사람에 대한 의뢰심도 갖지 말고 피해를 주지도 말고 언제든지 부지런히 노력하고 남을 도울 일이 있으면 돕는 것, 이렇게만 하면 개인의 마음도 다스릴 수 있고, 국민 모두가 잘 살게 될 것입니다."
하동=남경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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