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김지하(64)씨가 3월 2~13일 서울 종로구 관훈동 학고재아트센터에서 ‘지는 꽃 피는 마음, 김지하의 달마’전을 연다. 2001년 12월 묵란(墨蘭)으로 첫 개인전을 가진 이후 종종 매화도와 달마도도 곁들여 전시하곤 했으나 달마만을 주제로 개인전을 꾸미기는 처음이다.
그는 "부적으로까지 전락한 정형(定形) 달마를 부수는데 내 달마의 의미가 있다"면서 "달마의 선(禪)사상에서 하나의 생각을 치고 나가는 경지를 그리고자 했다"고 말했다. 그래서인지 그의 달마는 퉁방울눈에 짙은 눈썹의 기존 얼굴과는 사뭇 다르다.
그가 먹을 잡은 것은 1980년 출옥 뒤 오랜 옥고에 지친 심신을 달래기 위해 생명운동가인 고 장일순(1928~1994)씨에게서 묵란을 배우면서부터다. 그간 그린 난초와 달마 그림이 4,000~5,000점을 헤아린다. 이번 전시회에 출품하는 것은 그 중 지난해 그린 달마도 60여 점이다.
그러나 이번 개인전을 끝으로 그는 더 이상 그림은 그리지 않을 작정이다. 25년간 그려오다 보니 권태감이 들기 시작했다는 게 이유다. "붓끝을 보면 기운을 잃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새벽에 눈을 뜨자마자 먹방에 이끌려가듯 했는데, 이젠 훤히 동이 터도 붓 잡을 생각이 들지 않아요. 한 갈래 권태의 작은 기미만 있어도 즉시 중지하는 것이 좋다는 옛 가르침에 따라 달마를 그리던 먹을 일단 놓으려 합니다."
대신 앞으로는 국한문 혼용의 자작시로 글씨를 훈련하고 쓸 작정이다. 소리글씨인 한글 서예는 자신 없지만 한문은 모양글씨여서 웬만큼 해도 서예로서 모양이 갖춰진다고 했다. 그는 "우리의 개념적 삶은 한자로 정형화하기 때문에 한글을 풍성하게 발전시키려면 한자도 섞어 써야 한다"며 "한글의 기초만 튼튼하게 다지면 한문 뿐 아니라 영어를 같이 써도 괜찮다"고도 말했다.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고 있는 광화문 현판 교체 문제에 대해선 대뜸 "국가보안법 폐지는 통과 안돼도 광화문 현판은 바꿔야 한다"고 단호한 입장을 보였다. "광화문 현판은 실용성의 차원이 아니라 상징의 문제로 봐야 합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쓴 현판을 그대로 달아온 역사의 비극도 기억할 겸 반드시 바꿔야 합니다. 한자로요."
1월 산문집 ‘생명과 평화의 길’을 출간하면서 생명사상과 관련한 이론·학술 활동을 중단하겠다고 밝혔던 그가 글씨에 앞서 요즘 한창 몰두하고 있는 일은 동화쓰기다. 옥살이 등을 이유로 미처 돌보지 못해 빚진 마음을 갖고 있던 두 아이를 뒷바라지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그는 %"이제는 논리가 아니라 작가적 상상력으로 내 담론을 설명하겠다"는 의지도 재확인했다. 집필 중인 동화는 2002년 한일월드컵 당시 저력을 보여준 붉은 악마를 소재로 한 것인데, 올 가을쯤 출판할 예정이다.
문향란기자 iami@hk.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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