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은, 동기나 목적 등 치열한 사유를 동반하는 고도의 정신적 행위이며, 돌이킬 수 없는 궁극적인 행위이다. 그런데 영국 만화가 앤디 라일리의 토끼가 쉼 없이 감행하는 자살에는 행위만 있을 뿐 정신, 이를테면 동기나 목적이 없다. 정신이 탈각된, 행위로서의 자살은 일종의 유희이다. 그 유희의 목적, 즉 쾌락을 극대화하는 유일한 수단은 자살의 방법에 대한 다양한 모색일 것이다. 거기에는 다만 고도의 ‘지능’이 요구될 뿐이다.
가령 DVD 플레이어의 둥근 홈에 머리%를 끼우고 선 토끼가 있다. 그의 오른 발은 리모컨의 닫힘 버튼 위에 얹혀 있다. 전기다리미를 덮고 누운 채 긴 막대기로 전원버튼을 켜려는 토끼도 있다. 또 어떤 토끼는 무려 766페이지에 달하는 하드커버 ‘해리포터와 불사조 기사단’을 인터넷으로 주문한 뒤 우편물 투입구 아래에 머리를 대고 기다리고, 정교한 트랩을 만들어두고 조만간 떨어질 칼날 아래 엎드려 마지막 식사를 하기도 한다.
어디 그 뿐인가. 스탠리 큐브릭의 걸작영화 ‘닥터 스트레인지러브’의 핵폭탄에 올라 앉기도 하고, ‘반지의 제왕’에 등장하는 사우론의 눈에 후춧가루를 뿌리거나, 사라 코너로 변장해 ‘터미네이터’를 기다리기도 한다. 한 컷 또는 서너 컷의 그림을 통해 거듭되는 모든 토끼의, 혀를 내두르게 하는 다양한 자살은 성공이 거의 자명해 보인다.
하지만 자살의 다양한 방식에도 불구하고 공통점이 있다면, 이는 자살 일반의 한계(?)이기도 한데, 어느 것 하나도 즉각적인 죽음은 없다는 사실이다. 리모컨의 DVD 닫힘 버튼을 누르기 직전 혹은 막대기로 전원버튼을 켜기 직전의 깊은 정적이 그것이다. 인상적인 것은 그 선택적 죽음의 휴지기에도, 라일리의 그림 속 토끼들의 표정에서는 한 치의 동요가 감지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라일리는 그 무념무상의 표정들을 처연히 보여줌으로써 역설적으로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과연 그 상황에 당신의 표정은 어떠할 것 같은가?" 라일리의 ‘유희적 자살’에 비로소 ‘정신’이 개입하는 순간이다.
지난해 9월 국내 출간된 첫 책 ‘자살토끼’는 무려 4만5,000부나 팔렸다. 이번에 나온 ‘돌아온 자살토끼’ 그 속편이다.
최윤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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