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영화배우 겸 탤런트 이은주(25·여)씨가 22일 자신이 살던 아파트에서 목을 매 자살했다. 이날 오후 1시20분께 경기 성남시 분당구 정자동 R주상복합아파트 이씨의 집 드레스룸에서 이씨가 옷걸이에 넥타이로 목을 매 숨져 있는 것을 이씨의 오빠(28)가 발견,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에 따르면 이씨는 이날 오전 6시까지 함께 사는 오빠, 어머니와 함께 밤새 뭔가 얘기를 나누다 자신의 방에 들어갔다. 이후 오후 1시가 넘도록 인기척이 없는 것을 이상히 여긴 오빠가 그의 방에 들어E가 숨진 이씨를 발견했다. 당시 이씨는 운동복 바지에 반팔 티셔츠 차림이었고, 침대 위에는 연필깎이 칼과 혈흔이 있었으며 그의 손목에는 자살하려 했던 상처들이 남아 있었다.
이씨 주위에는 B5 용지 크기의 종이 2장에 자신의 피를 찍어 쓴 것으로 보이는 ‘엄마 미안해, 사랑해…. 엄마 안녕’이라고 쓴 혈서가 놓여 있었다. 또 3장에 나눠 쓴 유서에는 ‘누구도 원망하고 싶지 않았어. 혼자 버티고 이기려 했는데… 일년 전으로 돌아가고 싶었어. 돈이 다가 아니지만. 돈 때문에 참 힘든 세상이야. 나도 돈이 싫어’라는 글이 적혀 있었다. 이어 ‘하나뿐인 오빠, 나보다 훨씬 잘 낫는데 사랑을 못 받아서 미안해. 10년 뒤쯤이면 가족끼리 한 집에서 살면서 하고 싶은 것, 가고 싶은 것 다 해보고 싶었는데…. 내가 꼭 지켜 줄께’라고 썼다. 또 ‘아무것도 해 줄 수 없는 날 사랑해 줬던 사람들, 만나고 싶고 함께 웃고 싶었는데. 일부러 피한게 아니야. 소중한 걸 알지만 이제 허락지 않아서 미안해’라는 유서를 남겼다. 마지막 페이지에는 ‘일이 너무 하고 싶었어. 안 하는 게 아니라 못하는 게 돼 버렸는데. 내가 아니고서야 어떻게 이 힘듦을 알겠어. 엄마 생각하면 살아야 하지만 살아도 사는 게 아니야. 내가 꼭 지켜줄거야… 늘 옆에서 꼭 지켜 줄거야’라고 끝을 맺었다.
가족들은 이씨가 지난해 10월 개봉된 영화 ‘주홍글씨’를 촬영하면서 알몸 연기 등 노출연기를 한 것 때문에 불면증으로 잠을 이루지 못했고, 우울증 증세도 보였으며, 이 때문에 자살했을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실제 이씨는 지난 3일 분당 서울대병원 신경정신과 상담에서 "만사가 귀찮고 기억력, 집중력이 떨어지고 밥맛이 없다. 하루에 1시간 밖에 못 잤다"고 호소한 뒤 2주일치 우울증 치료제와 함께 다시 치료를 받으라는 권유를 받았다. 이씨는 그러나 더 이상 병원을 찾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은 이씨 가족들을 상대로 정확한 사망 경위와 동기 등에 대해 조사 중이다. 이씨의 시신은 분당서울대병원 영안실에 안치됐다.
이씨는 유작이 된 ‘주홍글씨’에서 파격적인 노출신을 선보였다. 경찰인 애인(한석규)과 함께 실수로 차 트렁크에 갇힌 뒤 수일이 지나도록 구조되지 못하자 애인에게 총을 쏴달라고 부탁, 사실상 자살로 삶을 마감한다.
한편 이씨의 자살 소식이 전해진 이날 오후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는 접속이 폭주해 한 때 서버가 다운되는 소동이 빚어지기도 했다.
이범구기자 goguma@hk.co.kr
전성철기자 foryou@hk.co.kr
■ 이은주는 누구/ 도시적 이미지…영화계 차세대 유망주
이은주씨는 최근 출연한 드라마‘불새’(MBC)가 인기를 끌고 영화 ‘주홍글씨’에서 보여 준 연기 변신이 호평을 받으면서 주가를 높여가던 배우였다. 전북 군산에서 태어나 군산여중, 영광여고를 거쳐 지난 18일 단국대 연극영화과를 졸업했다.
1996년 선경스마트 학생선발대회에서 입상한 후 교복CF를 통해 연예계에 데뷔한 그는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성숙한 연기로 일찌감치 차세대 유망주로 꼽혔다. 98년 SBS드라마 ‘백야 3.98’에 심은하의 사춘기 시절 역으로 출연한 데 이어 ‘카이스트’에서 똑 부러지는 여대생 역을 맡아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이은주씨는 특히 영화에서 두각을 보였다. 18세에 영화 ‘송어’에 출연한 이후 ‘번지점프를 하다’ ‘오! 수정’(2001년 대종상 신인여우상) ‘연애소설’ ‘안녕! 유에프오’ ‘태극기 휘날리며’ 등에서 청순하면서 도시적인, 자신만의 독특한 이미지를 구축했다. 지난해 ‘주홍글씨’에서 남자 주인공 기훈(한석규)의 내연녀 가희 역을 맡은 이은주는 육체적 욕망과 인간적 슬픔 사이에서 방황하는 묘한 느낌의 인물을 훌륭하게 해석했다는 극찬을 받았다.
그러나 영화계 관계자들은 결국 그 ‘주홍글씨’가 발목을 잡아 이후에도 작품 속 캐릭터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우울증에 시달렸다고 조심스럽게 전하고 있다.
실제 이은주씨도 ‘주홍글씨’ 개봉 당시 인터뷰에서 "영화 속 캐릭터에 너무 몰입 돼 빠져 나오기 어렵다"고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했으며, "다음 영화에서는 꼭 발랄한 역을 맡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최지향기자 mist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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