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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 주장 '공정위 개편론' 설득력 있나/ 시장이 '재벌 폐해' 막을수 있느냐에 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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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 주장 '공정위 개편론' 설득력 있나/ 시장이 '재벌 폐해' 막을수 있느냐에 달려

입력
2005.02.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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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전국경제인연합회가 공정거래위원회를 겨냥해 "경쟁 촉진이나 똑바로 하라"는 내용의 공식 보고서를 내놓았습니다. 공정위의 ‘존재 이유’를 거론했다는 점에서 엄청난 독설입니다. 좀 심하게 말하면 국민 경제에는 도무지 도움이 안되는 일을 하고 있다는 겁니다. 보고서의 요지는 대기업 규제와 같은 ‘경제력 집중 억제 정책’은 ‘경쟁 촉진’이라는 공정위 의 ‘본래 목적’에 어긋난다는 겁니다. 대기업만 혼내는 바람에, 공정위가 기업간 경쟁 촉진을 오히려 저해하고 있다고도 했습니다. 이참에 공정위 역할이 개편될 필요가 있는 것인지, 아니면 전경련이 다른 의도로 보고서를 낸 것인지 살펴보겠습니다.

◆ 공정위의 업무

공정위의 업무는 ▦진입장벽, 영업제한 개선(경쟁촉진) ▦재벌의 선단식 경영 시정(경제력 집중 억제) ▦하청업체 보호 ▦불공정 약관, 허위광고 시정(소비자 주권 확립) 등 네가지 입니다.

공정위가 ‘대기업 혼내주는 곳’으로 인식되고 있다지만 사실 "공정위가 이런 것도 하나"라고 생각될 만큼 대기업 규제 업무는 일부입니다.

동네 학원들이 학원비를 함께 인상하거나, 투신사들이 광고를 통해 펀드수익률을 부풀린다면 모두 공정위의 처벌을 받습니다. 쇼핑몰의 불합리한 약관도 바로 잡고, 신문사의 과당 판촉행위도 감시합니다. 보험료 일괄 인상 등을 조장한다면 금융당국도 공정위의 따가운 시선을 받아야 합니다. 기업들로부터 좋은 소리 못 듣고, 부처들 사이에서도 홀대 받는 일을 하는 셈이죠.

◆ 전경련의 논리

전경련 보고서는 공정위의 이런 임무 가운데 ‘경제력 집중 억제 기능’을 폐지하라는 주장입니다. 외환위기를 벗어나기 시작한 2000년께부터 공정위의 무게중심이 ‘독점정책’에서 ‘경쟁정책’으로 옮겨가야 한다는 문제 제기가 대두됐는데, 전경련 보고서는 이와 유사합니다. 여기에 최근 공정거래법 개정 과정에서 판정패한 ‘감정’도 실려 있다고 봐야겠죠.

정부의 현 재벌정책은 소유지배구조에 대한 직접 규제입니다. ‘총수 1인의 황제경영’을 핵으로 하는 재벌의 폐해가 깊다는 한국적 특수성에 근거한 것이죠.

출자총액규제만 해도 ‘가공자본’(실제 자금 액수는 변함이 없는데 연쇄 출자가 이뤄지면서 의결권이 뻥튀기 되는 현상)의 형성을 막기 위해 기업의 출자 상한을 정해놓은 것입니다. 금융기관 의결권 제한도 재벌계 금융기관이 계열사에 행사할 수 있는 의결권의 상한선을 정한 것입니다. 고객의 돈을 경영권 유지의 지렛대로 이용하지 말라는 거죠.

경쟁정책의 관점에서 재벌 문제를 다루자는 논리는 산업내 독과점 규제나 카르텔(담합) 감시와 같이 소위 시장 집중 현상 등과 동일하게 취급하자는 겁니다. 지금과 같은 식의 직접 규제는 대기업간 경쟁과 이를 통한 경제 성장을 오히려 가로막고 있다는 비판입니다. 지배구조가 선진국 수준으로 개선되고 있는 만큼 교과서대로 하자는 거죠.

◆ 공정위의 논리

전경련 주장을 노골적으로 표현하면 공정위의 재벌감시 기능을 없애자, 즉 재벌정책 자체를 사실상 공중분해 하자는 겁니다. 전경련도 미안했는지, 굳이 재벌 규제가 필요하다면 재정경제부, 금융감독위원회가 하면 된다고 단서를 달았습니다. 그러나 공정위가 참여연대와 가깝다면 재경부는 전경련과 가깝습니다. 공정위의 재벌규제가 없어지면 재벌규제는 완화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어쨌든 전경련 보고서에 대해 공정위는 "아직 그럴 때가 아니다"고 반박합니다. 한국개발연구원 등의 연구결과, 기업이나 시장 상황이 아직 신뢰할 만한 수준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는 평가라는 겁니다.

그러나 지배구조가 차츰 개선되고 있는 것은 사실인 만큼, 기업 내외부의 견제시스템이 만족할 만한 수준으로 작동되면 출총제 등 직접규율 방식을 전면 재검토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시스템(시장개혁 3개년 로드맵)을 마련했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 관전 포인트

공정위 기능의 전면 재검토, 즉 재벌정책 전면 재검토의 필요 여부는 결국 재벌의 폐해를 시장과 기업이 스스로 교정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는지에 대한 판단에 달려있습니다. 이 같은 선결 조건이 미흡하다고 판단되면, 대기업간 경쟁과 성장에 일부 역기능이 있어도 공정위의 재벌 견제는 계속되겠죠.

재벌이 솔직하지 못한 방법으로 금융기관을 인수해 계열사의 자금 파이프 역할을 하게 한다면 고객들은 허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한 자릿수 지분을 가진 대주주의 결정으로, 우량 계열사의 자원이 다른 계열사로 빠져나간다면 우량 회사 주식을 산 주주들은 물론 국가적으로도 손해가 아닐 수 없습니다.

"출총제 같은 누더기를 왜 고집하느냐"는 재계의 지적에 "알몸으로 다니는 것보다는 일단 누더기라도 걸치고 있는 게 낫다"는 한 전문가의 얘기도 생각해볼 만한 대목입니다.

유병률기자 bry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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