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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사형제(死刑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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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사형제(死刑制)

입력
2005.02.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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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5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퀜틴형무소. 누명을 쓰고 가스실에서 죽음을 기다리던 여자 사형수 바버라 그레이엄에게 형집행 연기 통지가 날아왔다. 결박을 풀자 그는 정신을 잃었다. 그 사이 다시 집행 연기 취소명령이 하달됐고 그는 깨어나자 마자 사형 집행소식을 들었다. 울부짖는 그는 가스실로 끌려갔으나 또 다시 형 집행 연기를 알리는 전화가 왔다. 재판부는 20분 동안의 재심리 끝에 집행 정지를 부결시켰다. 세 번째로 가스실로 끌려간 그는 탈진상태였고 가스가 분출되자 오히려 안도감을 느꼈다. 수잔 헤이워드 주연의 ‘나는 살고싶다’라는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던 이 실화는 사법살인의 한 사례로 꼽힌다.

■ 사형 폐지론자들의 주장 가운데 ‘오판 가능성’이 있다. 사형장에서 "억울하다"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세상을 뜨는 사형수가 더러 있다고 한다. 1979년 9월 살인혐의로 사형 집행된 오휘웅은 "제가 죽은 뒤에라도 이 원한을 풀어주십시오"라는 유언을 남겼다. 사형이 정치적인 도구로 악용되기도 한다. 74년 확정판결이 내려진 지 20시간 만에 8명에 대해 사형이 집행된 인혁당 사건과 죽산 조봉암이 대표적인 예다.

■ 사형제는 계몽기 이후 250년 동안 끊임 없이 논란이 돼 왔다. 폐지론자들은 국가에 국민을 처형할 수 있는 도덕적 권리가 있는가라는 의문을 제기한다. 소외계층과 소수집단이 피해자가 된다는 불공평성도 거론된다. 카뮈, 피히테, 도스토예프스키, 빅토르 위고 등은 폐지론에 섰다. 사형 존치론자들이 내세우는 가장 강력한 명분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응보의 법도다. 흉악범으로부터 선량한 다수 국민과 사회를 보호한다는 것도 논거로 제시된다. 칸트, 헤겔, 루소, 로크 등은 정의를 만족시키는 방법은 사형밖에 없다고 믿었다.

■ 여야 국회의원 175명이 서명한 사형제 폐지 특별법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발의는 15대 국회 때부터 있었지만 상정은 처음이다. 현재 사형 확정자는 59명. 그러나 김대중 정부가 들어선 이후 지금까지 7년2개월 동안 단 한건의 사형집행도 없었다. 300여명의 사형수를 만났던 박삼중 스님은 "그들은 범죄를 저지를 당시의 잔인함이나 흉포함을 지닌 죄수가 아닌 인간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고 했다. 사형제는 ‘필요악’일까.

이충재 논설위원 cj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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