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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교수의 원포인트 경제학] (19) 기업성장론과 출총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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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교수의 원포인트 경제학] (19) 기업성장론과 출총제

입력
2005.02.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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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성장에 관한 이론에서 고전 중의 하나가 1959년에 나온 펀로즈의 기업성장론입니다. 최근에는 이 책의 발간 40주년 기념 논문집도 나왔죠. 펀로즈는 기업을 자원(핵심 역량)의 집합으로 보고, 기업은 잉여자원을 유망 사업 분야에 투자함으로써 성장한다고 보았습니다. 다각화도 잉여자원의 활용으로 보았으며, 기업 성장률은 결국 자원의 보유량에 의해 결정된다고 보았죠.

그런데 모든 것을 다 갖춘 선진국 기업과 달리, 이들을 뒤에서 쫓아가는 한국의 후발 기업들은 남는 물적자원, 인적자원, 경영자원, 연구개발 자원 등을 활용하여 성장하였다기 보다는 그 반대로 부족한 자원들을 갖추어 나가기 위해 성장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

기업이 성장하면서 새 사업분야에 진입하는 것은 필수적이고 당연한 과정이죠. 시장은 끊임없이 변화하며 기존 시장은 없어지고 새 시장이 태생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기업 성장에는 새 사업 분야를 기업 내부에 두는 방식과 외부에 새 기업을 설립하는 분사 방식이 있습니다.

미국이 기존 기업의 내부에 사업부라는 형태로 성장해 나갔다면 한국은 새 회사를 만들어 새 사업을 했죠. 그 이유는 각종 자원이 부족하기 때문에 여러 계열사들이 자본 참여나 채무 보증 방식으로 도와주고, 외부로부터 대출이나 신주 발행 방식으로 새 자본을 조달하기 위해서는 새 사업체 설립 방식이 훨씬 유리하기 때문이죠. 또한 각종 경쟁 자원이 선진 기업에 비해 부족한 상황에서 감수해야 할 위험과 초기 적자 기간을 버티려면 계열사들의 도움 없이는 힘들기 때문입니다.

삼성의 효자 사업인 반도체는 초기에 상당 기간 적자였고 이를 막느라 80년대 말 그룹 전체가 유동성 위기에 빠질 지경이었습니다. 즉, 새 회사 설립을 통한 새 사업 진출과 상호 지원은 선진국 기업이 장악하고 있는 시장에 후발주자가 진입하는 유일하고도 효과적인 수단이었습니다.

공정거래위원회의 전가의 보도인 출자총액제한 제도는 이 같은 출자에 의한 신규사업 진출을 규제하는 제도죠. 외환위기 이후, 인수합병이 자유화하고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지 않아 폐지됐다가 3년이 채 안돼 부활했습니다. 폐지됐던 시기에 기존 재벌들의 투자가 별로 늘어난 것이 없다는 이유로 이 제도가 투자의 장애요인이 아니라는 논리는 ‘출자를 통한 기업설립 후 투자’가 기업 성장의 주요 경로라는 기업성장론에 대한 무지이거나 의도적인 무시의 소치라고 밖에 볼 수 없죠. 아니면 공정위는 한국 기업듈업들이 더 이상 성장할 필요가 없다고 보고 있거나 내부 사업부 설치를 통한 성장이라는 선진국 방식을 기업들에게 강요하고 있는 것이죠. 이는 달리 보면 후발 기업에게 중요한 추격의 무기를 쓰지 말라는 것이자, 굳이 선진국 기업들을 이기려 하지 말라는 이야기입니다.

시장경제를 지향한다는 정부 부처가 아무 근거가 없는 5조원 또는 6조원이라는 자산기준을 가지고 기업을 옭아매고 있고, 그것도 부채비율이 100% 미만이 되면 풀어준다고 했다가 기업들이 이 요건을 충족하고 나니 이제는 이 조항을 없애는 등 예측 불가능한 자의적 규제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손이 잘 작동하지 못하는 시장 실패 상황에서, 이를 치유하기 위한 정부의 개입을 ‘보이는 손’이라고 하는데, 그 손이 오히려 질곡과 비효율성을 낳는 ‘보이는 발’이 된 것이죠. 이 ‘보이는 발’은 규제와 관련한 유형, 무형의 권익을 유지하려는 하나의 기득권입니다. 최근 나온 IMF 한국보고서가 지적한 대로, 한국경제를 망치는 관료들의 ‘유비퀴터스 핸드'의 대표적 사례라고 볼 수 있죠.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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