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6월 경기 용인시 백암면에 ‘삼포통과의례박물관’이 들어선다. 우리 민족의 장례역사를 세계 각 민족들과 비교하는 수많은 유물과 자료가 전시될, 말하자면 ‘세계장례박물관’이다. 장례용품 제조업체인 ㈜삼포실버드림의 대표이자 한국민속박물관회 이사, 서울보건대 장례지도학과 겸임교수이기도 한 임 준(55)씨가 온전히 사재를 들여 짓는 문화공간이다.
"박물관은 생사의 전 과정을 간접체험함으로써 스스로의 삶을 반추해볼 수 있도록 꾸며집니다. 중국의 진시황, 이집트 네파르타지 왕비의 능 등 가장 화려하게 꾸며진 묘실 속도 볼 수 있을 겁니다." 기록에 의거, 조선 왕의 장례도 폭 4m, 길이 85m의 어마어마한 규모의 모형으로 복원된다. 조각가 3명과 의례, 복식, 자료고증 등 분야의 유명교수 6명이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 현재 키 25㎝의 토우 1,300여개에 의상을 입히는 막바지 작업이 한창이라고 했다.
임씨는 이를 위해 30여개국을 다니며 2,000점이 넘는 각국의 장례용품을 모았다. 최근에도 조장(鳥葬)문화 자료수집을 위해 티베트 등지를 다녀왔다. "티베트인들은 생전에 덕을 많이 쌓은 이만 조장을 치를 수 있습니다. 독수리가 시신을 먹으면 영혼이 옮겨져 하늘로 날아간다고 믿는 거지요."
그는 아프리카 가나의 특이한 장례문화도 소개했다. 마을사람들이 모두 춤을 추며 축제처럼 상을 치른다. 장례는 죽은 자에 대한 위로행사다. 관은 고인이 생전에 동경하거나 좋아한 비행기나 벤츠 승용차, 옥수수 등의 모양으로 짜진다. 4월에는 세계박물관협회(ICOM) 회원들의 지원 약속을 받고 남미로 날아갈 계획이다. "나라마다 장례형식은 달라도 고인을 좋은 곳으로 보내고자 하는 마음은 다 똑같습니다."
임씨가 장례박물관을 구상한 것은 8년쯤 됐다. "사람들이 점차 고인 중심이 아닌, 남은 가족 중심의 형식적인 상을 치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장례의 의미를 제대로 인식, 계승토록 해야겠다는 생각에서 박물관에 착안했다.
전북 김제가 고향인 그는 대학 농공학과를 나와 지하수개발회사를 운영하다 91년 우연히 병원 영안실 운영을 제안받은 일을 계기로 장례사업에 뛰어들었다. "어머니는 ‘상놈 일’이라며 끝내 주변에 숨기셨지요." 수의, 관에 대한 품질보증제와 정찰제를 앞서 도입해 성공한 그는 한국의 장·제례를 연구한 ‘우리들의 북망산천’이란 책을 써 어머니 산소에 묻는 것으로 아픈 마음을 달랬다.
임씨는 유명재벌회장들의 장례도 도맡다시피 했다. "고 정주영 회장의 장례는 돌아가시기 보름 전 비서실의 연락을 받고 비밀리에 준비했습니다. 국장에 버금가는 규모였지요. 주변의 분분한 의견으로 상주 복장이 3번이나 바뀌는 소동도 있었습니다. 검은양복에 노란 완장이, 건 쓰고 발에 행전을 차는 것으로 됐다가 결국은 완전한 전통 굴건제복으로 바뀌었지요."
정몽헌 회장 때는 "유분을 금강산에 뿌려달라"는 유언 해석을 놓고 유족들간 의견이 엇갈렸다. 결국 임씨의 의견대로 선산에 매장하되 손발톱과 머리카락, 옷 등은 금강산에 묻거나 태워 뿌리는 절충형으로 결정됐다. 입관 때 몽구 회장이 가장 슬퍼했다. SK 최종현 회장 부부, LG 허준구 회장의 마지막 길도 그의 손을 거쳤다.
임씨는 말미에 가장 행복한 죽음으로 기억하는 사례를 소개했다. "이북 실향민 할아버지 상을 치를 때였습니다. 아들부부와 손자 한명에 조문객도 50명이 채 안 되는 서민 장례였지요. 그런데 초등학생 손자가 없어졌어요. 찾아보니 아이가 병풍 뒤에서 할아버지 손을 꼭 잡은 채 울고 있더라구요." 두고두고 가슴이 찡 하더라고 했다.
내친 김에 반대 경험도 물었다. "어느 교장이 모친상을 치르는데 친손자가 안 보여서 물어보니 ‘고3이어서 공부하라고 이모집으로 보냈다’고 합디다. 입시도 9개월이상 남은 때였어요. ‘저런 사람이 교육자라니….’ 참 씁쓸했습니다."
용인=박석원기자 s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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