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대 내기 골프를 한 혐의로 구속 기소된 피고인들에 대해 법원이 "내기 골프는 도박이 아니므로 도박죄가 성립되지 않는다"며 무죄를 선고해 논란이 일고 있다. 서울 남부지법 형사6단독 이정렬 판사는 20일 수십 차례에 걸쳐 억대의 내기 골프를 해 상습도박 혐의로 구속 기소된 이모(60)씨 등 4명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도박은 화투나 카지노처럼 승패의 결정적인 부분이 우연에 좌우되는 것"이라며 "경기자의 기능과 기랙량이 지배적으로 승패에 영향을 미치는 운동경기인 골프에서의 내기는 도박이 아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운동경기에서 승패에 재물을 거는 경우를 도박죄에 포함한다면 국가대표 선수가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딸 때 받는 포상금이나 프로선수가 일정수준 이상의 성적을 거둘 때 추가로 받는 성과급도 도박으로 봐야 하는 불합리한 결과를 초래한다"고 덧붙였다.
이씨 등은 2002년 12월 제주도의 한 골프장에서 각자 핸디를 정한 뒤 18홀을 전·후반으로 나눠 각 홀마다 1타에 50만~100만원씩, 우승자에게 500만~1,000만원의 상금을 걸고 골프를 치는 등 지난해 5월까지 26차례에 걸쳐 6억~8억여원의 판돈을 걸고 내기 골프를 한 혐의로 기소돼 징역 2~3년씩을 구형 받았다.
이에 대해 시민단체와 네티즌들은 "상식을 무시한 어이 없는 판결"이라며 성토하고 나섰다. 경실련 윤순철 정책실장은 "고스톱, 포커를 비롯한 각종 도박 중 실력이 승패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 것이 어디 있느냐"며 "억대의 내기 골프에 무죄를 선고한 것은 국민 정서와 상식을 무시한 처사"라고 비판했다.
과연 내기 골프가 도박인지 아닌지를 명확히 구분한 대법원 판례는 아직 없다. 다만 서울고법은 75년 "당구가 기량과 수련이 중요시되는 경기라 할 지라도 경기자가 그 승패를 확실히 알 있거나 또는 이를 마음대로 조작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며 "당구경기에서 우연성이 완전히 배제된 것은 아니므로 도박에 이용될 수 있다"고 판결했다.
전성철기자 foryou@hk.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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