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저출산이 커다란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구호가 아직도 귀에 쟁쟁한데 아이가 적어서 걱정하는 현실이 그저 낯설 뿐이다. 저출산이 개인에게는 ‘무자식 상팔자’일지 몰라도, 사회적으로는 경제 활력 감퇴, 고령화, 노년층 부양부담을 가져오는 심각한 사안이다.
우리나라의 출산율 감소는 세계적으로도 그 유례가 없을 정도로 급속하다. 1960년에는 여성 한 명이 평균 6명의 자녀를 출산하던 것이 지금은 1.1명을 조금 넘는 수준이다. 과거 우리사회는 인구과잉 상태였고, 이것이 경제발전의 발목을 잡는 한 걸림돌이었다. 정부의 과감한 출산억제 정책 실시와 국민들의 협조로 출산율은 급격히 감소했다. 대를 잇는 것을 중시하고 다수가 농업에 종사하던 시기에 시작된 정부의 출산억제 정책이 전 국민적 호응을 얻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사실 놀라운 일이다.
일반적으로 경제수준 향상은 자녀 수 감소 현상을 동반한다. 외견상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으면 더 많은 자녀를 낳아 키울 것 같은데 실제는 그 반대의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교육을 통한 사회계층 이동이 중시되는 사회에서는 자녀의 양보다는 질을 더 중시하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의 부모세대는 오늘날 기준으로 빈곤이 일상화한 여건에서 살았다. 하지만 자녀만은 풍족하게 낳고 살았다. 결혼, 출산이나 자녀양육과 관련해서 사람들의 인식과 행동에 뭔가 큰 변화가 일어났음이 분명한 것이다.
그간 결혼과 출산은 부부 당사자의 의사결정보다는 가문이나 가족의 영향을 더 많이 받았다. 기성세대에게는 결혼하지 않고 아이 낳지 않는 것이 조상과 부모에게 ‘차마 못할 짓’이었다. 90년대 초, 중반 두드러졌던 성비 불균형도 출산이 상당부분 대를 잇는 역할을 수행했음을 보여준다. 시간이 지나면서 출산과 관련한 가문이나 가족의 영향력은 서서히 감소했다. 출산은 이제 개개인의 선택이 되었다.
최근 대중매체에는 ‘출산파업’ ‘출산기피’ ‘결혼기피’ 등의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과연 그런가. 젊은 층이라고 결혼과 출산에 부정적일 것으로 생각지는 않는다. 다만 제반 현실적 여건이 결혼 및 출산과 관련된 이들의 선택을 제약한다고 본다. 왜 우리 사회의 젊은 층은 출산을 극도로 꺼리는가. 여성 한 명당 여섯 명 낳던 것이 둘 셋 정도로 준다면 문제가 없지만, 한 명 수준이면 국가적 재앙의 씨앗이 될 수 있다.
한번 20대 후반에 있는 남녀의 입장에서 결혼을 생각해보자. 구직, 고용여건은 불안정하다. 사교육비는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젊은 남녀가 결혼해 아이 낳을 엄두가 쉽게 나지 않을 상황이다. 특히 여성의 경우에는 결혼, 출산과 함께 커리어에 대한 꿈을 접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젊은 층이 결혼을 꺼리고 출산 시기를 늦추며 급기야 출산을 포기하는 것은 선택이되, 피치 못할 선택인 것이다.
낮아진 출산율 추세를 반전시키는 것은 어렵지만 방치해서는 안 된다. 저출산이 일정 수준을 넘으면 그때부터는 태어나는 아이 하나하나가 짊어질 부담이 너무 커진다. 소수가 노인부양의 부담을 전담하게 되기 때문이다. 저출산이 다시 저출산을 부르는 위험 수준에 이르기 전에 사회적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
출산율 감소에 가장 큰 ‘공’을 세운 정부가 출산 장려에도 앞장서야 한다. 우리 청년층이 아이를 더 낳을 환경을 마련해주든가 해외의 젊은 층을 데려와야 한다. 청년고용정책, 신혼부부를 위한 주택정책, 양성평등정책, 아동양육정책, 이민정책 등을 국가 생존의 차원에서 최우선적으로 검토할 때가 된 것이다. 아울러 공교육이 제 역할을 못할수록 사교육 의존도는 그만큼 커지고 출산 억제력도 커진다. 공교육의 현실화도 이런 측면에서 시급하다.
류근관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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