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도 안 되는 요구를 했고, 거의 매일 와서 죽는다고 소란을 피웠습니다. 우리도 할 만큼 했습니다."
서울 강서구청은 지난 18일 밤 10시께 구청 현관에서 장애인 주모(53)씨가 목을 매 자살하자 이례적으로 신속하게 대응했다. 언론사에 일일이 보도자료를 보내 ‘할 만큼 한 일들’을 상세히 설명했다. "후원금을 마련해 장례비용을 충분히 지급하겠다"는 후의도 덧붙였다.
구청에 접수·기록된 ‘주씨의 상담내용 12건’을 확인한 결과 복도의 전기요금을 지원해 달라, 목욕탕 무료티켓을 달라는 것 등이었다. 구청은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자 생계비와 장애인수당 외에 긴급구호비 등을 지난 1년간 870여만원 지급했고, 다른 복지기관을 통해 300만원짜리 전동휠체어까지 사 주었다고 했다. 하지만 그의 고민을 청취한 정황이나 관심을 기울인 흔적은 어디에도 없어 보였다.
이날도 주씨는 오후에 구청에 나와 구청장과의 면담을 요청하며 자살하겠다고 소란을 피웠다. 그러나 구청 직원들은 그의 ‘의례적인 행위’에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밤이 깊어 구청장과 직원들은 평소처럼 퇴근했고, 야간 당직자만 남아 그의 요구를 ‘일상적인 장애인의 투정’쯤으로 생각했다. 모든 사람들이 무관심 속에 곁을 비운 사이 그는 구청 현관에 목을 맸다.
서울의 25개 자치구 중 강서구청만큼 장애인에게 물질적 도움을 주지 않는 곳이 어디 있겠는가. "전동휠체어를 마련해 주고 구청장과의 면담 자리에도 12번이나 참여토록 하고, 일반적인 정부지원금 외에 별도의 생활보조비도 지급하지 않았느냐"는 등의 해명이 "강서구에서 그를 모르면 간첩"이라는 구청 직원의 짜증스런 말에 얹혀 변명으로만 와서 닿는다.
조윤정 사회부기자 yj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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