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 동안 국내 출판계에 ‘유전과 양육’이라는 인간 본성의 기원을 둘러싼 학계의 논쟁을 소개하는 책들이 꾸준히 번역 출간되고 있다. 이 중에는 다윈의 진화론에 기반해 인간의 본성과 진화, 사회화 현상들을 설명하는 사회생물학이나 진화생물학 관련 책들, 반대로 환경의 영향력을 중요하게 다룬 책들이 포함되어 있다. 최근 들어서는 과학계의 연구 성과를 반영해 유전자나 환경, 어느 한쪽의 손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둘의 긴밀한 상호작용으로 인간의 본성을 설명하려는 추세가 두드러진다. 언어심리학 저술의 스타로 꼽히는 스티븐 핑커의 ‘빈 서판’(사이언스북스 발행)이나 과학칼럼니스트로 명성을 떨치고 있는 매트 리들리의 ‘본성과 양육’(김영사 발행) 등의 걸작들은 모두 그런 시각을 반영하고 있다. 미국의 뇌과학자 스티븐 쿼츠 캘리포니아공대 교수와 테렌스 세지노브스키 UC샌디에이고 교수가 쓴 ‘거짓말쟁이, 연인, 그리고 영웅’도 같은 맥락이다. 갖은 실험을 인용해 인간 본성을 해명하는 글의 진행도 비슷하지만 이 책은 다른 책에 비해 몇 가지 장점을 지니고 있다.
우선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힘의 핵심’을 ‘뇌’로 보고, 인간 본성의 비밀을 해명하기 위해 뇌의 기능이 어떻게 형성, 발전해가는지에 집중했다는 점이다. 최근 인지신경과학의 연구성과에 따르면 뇌를 유전자가 간직한 본능을 구현하는 덩어리로 간주하는 진화심리학의 개념은 잘못이라고 저자들은 주장한다. 인간은 성장하면서 새로운 사물을 경험하거나 다른 기술을 배울 때마다 마음의 회로를 재구성하고 이런 과정은 성인이 된 뒤에도 멈추지 않는다는 것이다. 쥐는 날 때부터 지능이 결정된 것이 아니라 쳇바퀴가 있는 환경에서 더 똑똑해지며, 이런 뇌의 변화는 인간도 마찬가지라는 주장이다. 그것은 "인간이 유전자에도 불구하고 유연성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 유전자들 덕분에 유연성을 갖게 되었음을 보여준다"고 저자들은 설명한다.
나아가 저자들은 뇌에 대한 탐구가 ‘우리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의 답을 구하는 작업과 동격이라고 본다. 그들은 생물학과 문화의 상호작용을 통해 뇌와 몸이 어떻게 발달해 가는가를 풀어가는 자신들의 탐구 장르를 ‘문화생물학’(cultural biology)이라고 규정했다. 그 속에서 그들은 인간이 유전자의 산물인지, 환경의 조각품인지 따지는 것뿐 아니라 인간의 자기인식, 사회성, 폭력과 범죄 등이 어떤 상황에서 나타나는지, 그 문제들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 따져 나간다. 저자들은 뇌가 환경 변화에 따라 끊임 없이 새롭게 회로를 만들어가는 구조물이라고 보기 때문에 당연히 더 나은 ‘공동체의 디자인’, 이웃과의 ‘상호작용’ 등 사회적인 맥락 전체의 구조를 계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평가한다.
제목에서 눈치 챌 수 있듯이 무엇보다 이 책의 큰 장점은 재미 있고 쉽다는 점이다. 수많은 실험의 의미를 풀어가기 위해 ‘탑 건’ 같은 할리우드 영화에서, 막스 베버 등 거장 학자들의 이론까지 두루 연관지어 설명하는 솜씨는 탁월하다고 밖에 할 수 없다. 최근 번역된 비슷한 주제의 여러 책 중에서도 가장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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