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전 종식 후에도 유지돼오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위상 문제가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의 유럽 방문을 앞두고 다시 논란이 되고 있다. 부시 대통령과 가맹국 정상들은 22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정상회담을 갖고 동맹 강화조치를 내놓을 예정이다. 회의에서는 나토군의 이라크 방위군의 훈련 강화 및 아프간 주둔 연장 방안 등이 합의될 전망이다.
그러나 미국과 유럽은 서로 다른 속내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특히 게르하르트 슈뢰더 독일 총리는 12일 독일 뮌헨에서 열린 유럽연합(EU) 안보회의에서 페터 슈트루크 국방장관에게 대독 시킨 연설문을 통해 "나토는 낡은 기구"라고 비난해 파장을 불렀다.
그는 "나토는 더 이상 대서양 연안의 동맹국들이 전략을 논의하고 조정할 수 있는 최선의 장소가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15일에도 마누엘 바로수 EU 집행위원장을 만나 " 나토는 개혁돼야 한다"면서 "나토라는 기구 자체가 아니라 대서양의 위상을 다시 강화할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강조했다.
도널드 럼스펠드 미 국방장관은 "대서양의 문제를 논의할 곳은 분명히 나토"라면서도 슈뢰더 총리의 주장을 반박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헬무트 슈미트 전 독일 총리가 나섰다. 그는 17일 차이트 지에 기고한 글을 통해 "미국은 나토를 사유화하려한다"며 "자유를 확산하는 데 나토를 이용하려 하지만 그 같은 일은 나토의 임무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21일부터 나흘간 계속되는 부시 대통령 유럽순방의 성패는 이 같은 이견을 얼마나 좁힐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미국측은 이라크 전쟁으로 훼손된 동맹관계를 복원하는 것은 물론, 이란 핵문제 등을 포함한 핵확산금지조약(NPT) 문제에 관해 최대한 이해를 구한다는 복안이다. 콘돌리사 라이스 미 국무장관은 이미 이달 초 독일과 프랑스 등 유럽 8개국 순방을 통해 미국에 더 도움을 줄 수 있는 나토의 역할을 강조한 바 있다.
1949년 창설된 나토는 지난해에는 불가리아 등 구 소련권 7개국이 회원국으로 가입하면서 가맹국이 19개국에서 26개국으로 확대하는 등 외형적으로 몸집을 불리고 있다. 2003년에는 신속대응군(NFR)을 창설해 테러 위협에 대비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는 1999년 코소보 파병 이후 뚜렷한 활동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미국이 군사력의 대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에 미군 출신이 군사령관을 맡으며 실질적인 통수권을 갖고 있는 상태다. 9·11 이후 테러와의 전쟁에서도 나토는 군사기구라는 성격을 무색케 할 정도로 존재가 미미했다.
로이터 통신은 16일 분석기사를 통해 "나토가 이스라엘 가자 지구 등 지역분쟁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며 "이번정상회담은 나토의 미래를 좌우할 분수령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고성호기자 sungho@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