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A대 교육대학원 3학기째인 박모씨(32·여)씨. 명문대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카드사 인사부서에서 근무하다 2년 전 미련 없이 사표를 던지고 진학했다. 회사가 30% 구조조정 방침을 밝힌 것이 동기였다. "나이와 가정 때문에 자리를 붙들고 있다가 결국 구조조정에 내몰리는 선배들의 모습을 보고 저게 미래의 내 자화상일 수 있다는 두려움이 들더군요. 더 늦기 전에 안정적인 진로를 찾기로 결심했습니다." 박씨는 30, 40대가 대부분인 학과 동료들의 거의 모두가 비슷한 경우라고 했다.
서울 B대 교육대학원에서 사회교육을 전공하는 김모(34)씨도 국내 유수 대기업의 온라인 사업팀에서 일하다가 그만둔 경우. "야간이라서 직장을 다니며 수업을 들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야근과 초과근무가 많아 쉽지 않았다"며 "고민 끝에 교사가 되는 쪽에 올인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교직을 인생의 마지막 승부수로 여기는 일반 직장인들이 교육대학원으로 대거 몰려들고 있다. 학부 때 교직을 이수하지 않았어도 교육대학원에서 관련학과를 전공하면 2급 정교사 자격증을 받아 임용고사에 지원할 수 있기 때문. 대부분 야간수업이어서 생업과 병행할 수 있는 데다, 올해부터는 임용고사의 연령 제한마저 없어져 40, 50대 퇴직자나 주부들도 교육대학원 진학대열에 뛰어들고 있다.
이 때문에 각 대학원이 미달사태를 빚고 있는 요즘에도 교육대학원은 엄청난 경쟁률을 보이고 있다. 이화여대 관계자는 "최근 몇 년간 영어교육전공의 경우 보통 10명 모집에 170명 이상이 몰린다"고 밝혔다. 지방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여서 경북대는 올해 교육대학원 국어, 영어, 수학교육전공에 각 131, 118, 126명이 지원해 평균 10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
종전 주로 현직 교사들을 교육대상으로 했던 교육대학원의 성격이 일반인의 교사자격증 취득창구 성격으로 바뀌면서 지원자들의 연령도 크게 높아지는 추세다. 연세대 교육대학원 측은 "올해 30세 이상 고령입학자가 전체 정원 380명 가운데 60%를 넘었다"며 "성비에서도 남성비율이 현저하게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일반인들이 교직으로 방향을 트는 것은 물론 직업적 안정성 때문이다. 만62세까지 정년이 보장되는데다 급여도 대기업에 크게 밑돌지 않는 수준이다. 올해 신규임용되는 공립 중고등학교 교사(군필 남자 11호봉 기준)의 경우 시간외수당과 성과급을 제외한 연봉이 2,500만원 수준. 이는 지난 연말 조사된 100대기업의 대졸 평균초임 2,637만원이나 81개 외국계기업 대졸 평균초임 2,421만원과 엇비슷한 액수다.
문제는 교육대학원 출신이 실제로 교사가 되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라는 점이다. 2004년 현재 교육부에 등록된 교육대학원은 134개에 한해 2만500여명이 입학한다. 거기에 사범대가 1만778명의 신입생을 받고, 일반학과 교직 이수자도 한해에 2만2,000명이 넘는다. 당연히 임용고사 응시자는 2002년 3만2,645명에서 2004년 5만372명으로 급증했다. 반면 임용고사를 통과해 공립중등교사가 되는 경우는 2002년에 7,301명에서 2004년에는 5,867명으로 오히려 급감하고 있다. 응시자 10명 중 한명 정도만 겨우 임용고사를 통과하는 셈이다.
더욱이 2011년까지 가산점이 주어지는 사범대 출신과 달리 교육대학원은 아무 혜택이 없어 지난해 임용고사에서 서울지역 교육대학원 졸업자들의 합격률은 고작 3%에 정도에 불과했다. 장기불황에 따른 교직의 상대적 인기상승으로 신규교사 수요가 계속 감소할 것으로 추산되는 만큼 이처럼 낮은 현재의 ‘성공’ 가능성마저 더욱 낮아질 전망이다. 결국 많은 이들이 막연한 희망만으로 승산 없는 전장에 뛰어들고 있는 셈이다.
이 때문에 교육대학원을 졸업하고도 기약 없이 임용고사에 매달리는 또 다른 형태의 ‘고시폐인’들이 양산될 조짐마저 나타나고 있다. 몇 차례 사업실패 후 일찌감치 교직으로 목표를 수정, 지난 여름 교육대학원을 졸업한 한모(38)씨는 "서울 노량진의 학원에서 임용고사를 준비하고 있는데 같은 반에 나이 들고 의욕이 꺾인 삼수, 사수생들이 즐비하다"며 "나도 만년 실업자가 돼 같은 처지에 놓이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자주 엄습한다"고 토로했다.
홍석우기자 musehong@hk.co.kr
■ 졸업자 인터뷰/ "3년 등록금만 3,000만원" "퇴직금 태반이 사라져"
"교사가 되기 위해 3년 동안 등록금만 해도 3,000만원이 넘게 들었는데 달랑 자격증 하나 받은 거네요."
지난해 2월 서울의 모 교육대학원에서 사회교육전공 과정을 졸업한 김모(33·여)씨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임용고사에 두 번 불합격했다. 교원자격증 소지자만 따져도 경쟁률이 20대1을 넘었다. 안정된 직장을 다니던 김씨가 교육대학원 진학을 결심하게 된 2001년에는 상황이 그리 심각하지는 않았다. "당시에는 총 지원자 중 30%는 합격한다고 해서 한 번 해 볼만 하다고 생각했죠." 그러나 경기침체로 교사가 인기직종으로 떠오르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김씨는 현재 사립학교의 기간제 교사자리를 찾으면서 세 번째 임용고사를 준비하고 있다.
그래도 남편이 빠듯한 수입이나마 직장을 가진 김씨의 경우는 나은 편이다. 안모(37)씨의 경우는 10년 가까이 다니던 대기업에서 밀려난 뒤 2년 째 대책 없이 학원가를 떠도는 경우다. "사업을 권한 친구도 있었지만 더 이상 불안한 경쟁에 뛰어들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되기만 하면 가장 안정적인 길을 찾았지요." 퇴직금의 태반이 대학원 수업료와 한달 30만~40만원씩 드는 학원비로 사라졌다.
"갈수록 임용고사 경쟁률이 높아져 합격 가능성이 더욱 더 없다는 걸 알지만 이젠 다른 방안도 없네요." 그는 아내와 자식들의 눈치가 보여 조만간 고시원을 찾아나갈 ‘무책임’한 생각마저 하고 있다.
홍석우기자
■ 해법은 없나/ 134개 난립… "숫자 줄여야"
현재의 상황은 무엇보다 경제불황에 따른 여파이기는 하나 기본적인 교원 수급 현실조차 고려하지 않은 채 이뤄진 교육대학원의 무분별한 신설과 증설에도 그 책임이 있다.
1993년 48개에 불과하던 전국의 교육대학원은 2003년 134개로 급증했다. 교육부는 97년 이후 설립된 교육대학원에는 교원자격증을 주지 않고 있다"고 밝혔으나 현재 교육대학원의 70% 이상이 그 이전에 설립됐다. 결국 이렇게 늘어난 교원자격증 부여 기관이 불황 속에서 안정적인 생계수단을 찾는 이들을 유인하고 있는 셈이다.
이 때문에 사범대들은 교육대학원의 대폭 축소를 요구하고 있다. 손성민 전국국립사범대학학생연합 집행위원장은 "현재 양성 대 임용비율은 기형적"이라며 "중등교사임용체제의 일원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교육대학원 측은 당연히 이에 반대하고 있다. 서정화 홍익대 교수(전국교육대학원장협의회장)는 "여러 분야의 전문가가 교사가 될 수 있도록 다원화한 교원양성은 필요하다"는 원칙론을 고수하고 있다.
교육부는 경기 등 외적 요인과 맞물린 사안의 성격상 마땅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11월의 ‘교원양성체제 개편 시안’에도 4년간 취업률이 10%를 넘지 못할 경우 교원자격증을 주지 못하게 하는 방안 정도를 담았을 뿐이다. 그러나 이 방안 역시 교육대학원들의 거센 반발로 현실화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홍석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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