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사는 모든 곳에 쥐들이 산다. 쥐는 인간을 비추는 거울과 같다." ‘왜 쥐인가? 하필이면 그토록 역겨운 것을 이야기하겠다고 나서는가?’라는 물음에 로버트 설리번은 인간이 쥐와 벌여온 사투와 그럼에도 끝낼 수 없었던 지독한 공생의 역사를 강조한다.
뉴욕타임스의 ‘올해의 주목할만한 책’ 저자로 두 차례 선정됐던 자유기고가 설리번은 2001년 뉴욕 맨해튼의 뒷골목 이든스앨리에 베이스캠프를 차리고, 이곳을 인간과 공유하고 있는 쥐들을 관찰하며 사계를 보냈다. 그곳은 미국 이민사의 출발지인 뉴욕 항구와 세계 자본주의의 중심인 월스트리트를 지척에 둔, 뉴욕 중심부의 은폐된 지점이었다.
그의 관찰 대상은 ‘라투스 노르베기쿠스’라는 학명의 시궁쥐였다. 미국 독립전쟁 때 영국 이민자들과 함께 대서양을 건너와 아메리카 대륙에 상륙한 시궁쥐는 원래 이땅에 번성했던 곰쥐를 밀어내고 20세기 초반 미대륙을 장악했다. 인간은 페스트 등의 질병을 옮기는 쥐를 ‘공공의 적’으로 지목하고 박멸을 시도하며 생존에 위협을 가했다. 그럼에도 뉴욕쥐는 9·11테러로 붕괴된 세계무역센터 땅속에도 생존의 흔적을 남기며 끈질기게 ‘어둠 속의 뉴요커’로 건재한다.
맨해튼 뒷골목을 활보하는 쥐들을 지켜보며 설리번은 거대문명도시 뉴욕을 형성한 인간의 역사를 추적했다. 19세기 중반 뉴욕의 유럽 이민자들은 선술집 지하에서 벌어지던 쥐싸움에 돈을 걸고 열광하며 하루벌이 노역의 고된 삶을 달랬다. ‘갱스 오브 뉴욕’시대의 쥐싸움은 나중에 야구 같은 스포츠이벤트로 이어졌다. 쥐는 뉴욕 하층민의 투쟁사에도 등장한다. 1950년대 뉴욕 빈민가 주거환경 개선의 도화선이 된 집세지불거부운동에서 빈민가 주민들은 자신들의 분신으로 쥐를 들고 나와 대항했다. 1968년 청소부 파업 때도 쓰레기가 쌓인 뉴욕에 쥐떼가 창궐, 결국 청소부의 권익 향상을 이뤄낸다.
인간이 뱉어낸 악취나는 찌꺼기를 기반으로 생존하는 쥐의 출몰과 인간의 역사는 교묘하게 겹쳐진다. 설리번은 인간의 삶이 ‘인간의 식탁 아래 숨어서, 스트레스에 시달리며, 공포에 떨며, 몸집이 더 큰 쥐들에게 압도당한 채 사는’ 쥐와 비슷하다는 생각에까지 이른다. 굳이 쥐를 연구하고 설명하고자 했던 이유이다.
문향란기자 iam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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