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박근혜 대표가 18일 고향 대구를 찾았다. KTX를 타고 내린 동대구역에는 이른 아침, 쌀쌀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지지자 300여명이 몰렸다. 최근 웃을 일이 별로 없던 박 대표는 지지자들의 ‘박근혜’ 연호 속에 활짝 웃었다. 그는 어려운 상황이면 어김없이 대중 속으로 달려갔고 이번에도 그런 선택을 한 듯 하다.
지난해 3월 대표 취임 이후 몇 차례 흔들림이 감지됐던 박 대표가 위기를 맞은 것은 지난 연말 4대법안 정국을 보내고 나서다. 이념적 완고함, 행태의 융통성 부족에 비판적 지지파인 소장파마저 "박 대표가 이렇게 강경 보수인지 몰랐다"며 등을 돌렸다. 지난 3, 4일 충북 제천의 의원 연찬회는 이 같은 상황을 압축해 보여주었다. 박 대표는 속출하는 비판에 속수무책이었다. 강한 집착을 보였던 당명 개정도 관철하지 못했다. 지지도마저 하강곡선을 그렸다. 박 대표의 ‘대권 회의론’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 "박근혜는 안된다?" =‘박근혜 회의론’에 방점을 찍는 쪽은 그의 과거와 현재 모두를 문제 삼는다. 무엇보다 선친 박정희 전 대통령과 관련된 과거사 문제다. 홍준표 의원 등 반박(反朴) 의원들은 "과거사의 짐을 진 박 대표가 아들 병역 문제로 침몰한 이회창 전 총재의 전철을 밟을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여권의 과거사 공세는 시간에 비례해 더욱 노골화할 것이고 개인 사생활 문제까지 터져 나올 것"이라는 말도 나온다. 그러면서 반박 의원들은 "박 대표가 과연 견뎌낼 수 있겠냐"고 물음표를 찍는다.
리더십 부재도 주메뉴다. 그는 계보가 없다. 여기저기서 흔들어대지만 방패 역할을 할 계보가 없다 보니 리더십 문제가 확대 재생산됐다. ‘스킨십 부족’의 비판은 "정치인으로서 폭이 너무 좁다"는 비판으로 변했다. 측근 전여옥 대변인은 "순수하다"고 평가하지만 많은 의원들은 "자기에게 싫은 소리를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대중 인기라는 자산은 줄어들고 있지만 리더십이라는 새로운 자산이 축적되지 못한 대신 과거사의 부채가 덧붙여진 형국이다.
여기에 2006년 당으로 복귀할 이명박 서울시장과 손학규 경기지사 등 대권 경쟁자들의 도전은 더욱 거세지고 있다. 홍준표 이재오 김문수 의원 등 국가발전전략연구회, 남경필 원희룡 의원의 수요모임도 자기 세력을 다지기 시작했다. 지금보다 몇 배의 난관이 박 대표를 기다리고 있다는 얘기로 읽어도 된다.
◆ 정면돌파냐 조기 퇴진이냐 = 최근 당내에선 회의론을 돌파하기 위해 박 대표가 4·30 재보선 이후 모종의 결단을 내릴 것이란 관측이 많다.
그 중 하나가 조기 퇴진이다. 박 대표의 공식 임기는 2006년 7월까지다. 하지만 안팎의 공세에 무작정 당하기보다는 물러서서 재충전의 기회를 갖는 게 더 낫다는 것이다. "자리에 연연하지 않는다"는 박 대표의 연찬회 발언이 그런 맥락으로 이해되기도 했다. 그러나 박 대표가 임기를 못 채우는 상황은 대권 레이스의 조기 낙마를 의미한다는 분석도 엄존한다. 조기 전당대회를 열어 재신임을 요구할 것이란 관측도 있다. 현재로선 대안이 없는 상황이다 보니 박 대표가 재신임을 받을 것이라는 얘기다.
어쨌든 4·30 재보선 직후가 박 대표의 승부처가 될 것이라는 데 관측이 일치한다. 승부수의 착점은 당 혁신일 것 같다. 박대표는 18일 대구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대권에 대한 생각을 전혀 하지 않고 대표직을 수행하고 있다"며 "대통령을 배출할 수 있는 정당의 모습과 능력을 갖추는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박 대표의 자산도 여전히 파괴력이 있다. 최근 박 대표의 지지세력인 박사모가 정치세력화를 선언했다. 대중적 인기는 당내 후보군 중 가장 출중하다. 박 대표측은 "당의 변화가 가시화하면 회의론도 잦아들 것"이라며 "과거사와 아들 병역 문제는 성격이 다른 만큼 창(昌)과의 단순비교는 곤란하다"고 일축한다.
그의 대중적 이미지에 개혁이 더해지면 위기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박 대표가 올 한해 잇따를 시련의 관문을 통과하느냐가 대권까지의 순항 여부를 결정지을 것이다.
이동훈기자 dhlee@hk.co.kr
최문선기자 moonsun@hk.co.kr
■ 與黨이 본 朴대표/ "리더십 한계 봉착" "오히려 藥될수도"
열린우리당 의원들은 최근 당 안팎의 도전에 직면한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에 대해 "어차피 한번은 거쳐야 할 홍역을 치르고 있다"며 추이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우리당 의원들 사이엔 박 대표에 대한 부정적 전망이 많은 편이다. "이미지로 버텨온 리더십이 이제 한계에 봉착했다"는 얘기다. 이들은 특히 지난해 연말 4대 법안 협상과정에서 보인 박 대표의 완고한 태도를 패착으로 꼽았다. "온화한 개혁적 이미지에서 보수 강경 노선으로 선회하면서 수구적 이미지가 됐다"(우원식), "그때 전향적 모습을 보였더라면 박 대표가 여야를 통틀어 가장 주목 받았을 것"(김현미)이라는 지적이다.
대권 레이스는 중간 세력을 잡는 싸움인데, 박 대표가 그들의 신뢰감과 참신한 인상을 심는 데 실패했다고 보는 것이다. 여당 일각에서 "박 대표가 한나라당 대선후보로 나오면 우리가 필승"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그러나 박 대표는 여전히 두려운 존재라는 견해도 엄존한다. 그에겐 아직 기회와 시간이 있다는 것이다. 정장선 의원은 "본격 대선 레이스가 시작되기도 전에 위기를 맞게 된 것이 오히려 약이 될 수 있다"며 "부친의 과거사 문제 등을 과감하게 털고 나가면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의원은 "합리적 개혁 노선으로 난관을 정면으로 돌파하는 것이 박 대표의 해법"이라며 "그럴 경우 여성적 포용력, 대중적 인기 등으로 파괴력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송용창기자 hermeet@h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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