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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zine Free/ 떠나는 주말 - 여수 동백꽃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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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zine Free/ 떠나는 주말 - 여수 동백꽃여행

입력
2005.02.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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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둑, 투둑’

거침없이 내리쏟던 햇빛이 튕겨져 나온다. 동백나무는 사철 반질반질한 두꺼운 잎으로 갑옷을 둘러 바닷바람에 맞서고 햇빛과 겨룬다. 하지만 한겨울 매서운 해풍에 벼려진 빛은 더욱 날카로워지고, 그 태양의 창은 마침내 갑옷의 틈새를 깊숙이 뚫고 들어와 선연한 피꽃을 피워냈다.

짙푸른 잎새에 붉은 꽃잎, 그리고 샛노란 수술이 만들어내는 정열적인 색의 조화는 동백만의 아름다움이다.

여느 꽃 피고 지는 봄, 여름은 싫다 하고 유독 찬바람 부는 겨울 저 홀로 빛을 뿜는 고고함이란. 그 강렬한 아름다움에는 향도 곁가지일 뿐. 동백의 내음은 그래서 짙지 않다.

동백은 두 번 핀다. 진초록의 잎새 위로 한번 피고 눈물처럼 후두둑 떨어져 바닥에 또 한번 피워낸다. 밑동이 붙은 다섯장의 꽃잎이 수줍게 벌어진 가장 아름다운 그 순간 꽃봉오리는 통째로 속절없이 낙하한다.

‘툭, 툭’.

누구는 동백꽃 떨어지는 처연함이 동학군의 머리가 참수당해 떨어지는 듯하다 했다. 피는 것보다 지는 모양이 아름답다는 동백. 시들고 이지러져 인생을 무상케 하는 다른 꽃잎과 달리 동백은 떨어졌어도 곱다. 바람에 분분이 허망하게 날리지 않고 세상 아무런 미련 없이 스스로 단절하는 뒷모습은 절정의 붉은 빛 만큼이나 뜨겁다.

겨울의 끝자락 새로운 뜨거움을 갈망한다면 전남 여수로 갈 일이다. 오동도, 돌산도, 거문도 등 미항 여수의 아름다운 해변은 지금 동백이 지천. 온통 붉게 타오르고 있다.

동백 가득 수놓은 바닷가 벼랑에 올라서 보라. 만경창파 쪽빛 바다가 그대의 답답한 가슴을 시원하게 쓸어낼 것이고 그 비워진 곳에 한 점 붉은 정염이 꽃피울 것이다.

오동도(여수)=글ㆍ사진 이성원기자 sungwon@hk.co.kr

■ 여수 동백꽃여행 | 거문도 - 쪽빛 해풍의 입맞춤이런가 동백의 가슴은 붉게 타고

동백의 고향 여수(麗水)는 한자 이름 그대로 고운 물의 땅이다. 다도해해상국립공원과 한려해상국립공원을 한데 품은 여수의 바다는 어느 곳에 서든 절경이다. 여수만, 가막만 등 포근한 바다에 무리지어 떠있는 섬들. 동백 말고도 섬으로 꽃을 피운 바다, 그곳이 여수다. 그 섬들을 헤치고 나가 만나는 섬이 거문도다. 19세기 열강의 발길에 채이던 시절, 영국군 무단점령 등의 아픔을 간직한 역사의 섬이다.

일출로 여수항을 물들인 붉은 빛을 맘껏 들이마신 뒤 배에 올랐다. 작고 아담한 갈매기떼의 인사를 받으며 거문도행 여객선은 돌산대교를 지나 가막만의 섬들 사이를 비집고 나간다. 갈라진 물살이 뱃전과 유리창을 때려댔다.

나른한 겨울 햇살을 받으며 2시간을 달리니 목적지인 거문항이다. 동도와 서도, 고도 등 3개의 섬으로 구성된 거문도. 이 섬들은 두 손을 조심스레 모은 모양으로 내항을 아늑하게 감싸고 있다. 태평양의 거센 파도가 넘볼 수 없는 천혜의 항구다. 영국군이 러시아의 남진을 막고자 해밀턴항이라 이름 짓고 1885년부터 2년간 불법 점령했던 이유가 여기 있다.

거문도의 동백트레킹은 서도의 유림해수욕장에서 시작된다. 여객선선착장이 있는 고도에서 서도까지는 삼호교 다리가 놓아져있다. 해수욕장을 끼고 산으로 오르는 오솔길은 호젓했다. 이끼 낀 바위가 운치를 더하고 우거진 동백이 붉게 인사한다.

한 5분쯤 올랐나. 숲길이 끝나고 이제부터 산 능선이다. 반대편 바다와는 절벽으로 만난다. 벼랑을 타고 능선은 길게 이어진다. 사방 가득 들어찬 바다는 청청(靑靑)하다. 찬란한 햇빛을 받은 바다는 에머랄드빛, 코발트빛 등 그 깊이에 따라 다양한 빛으로 반사한다. 깎아지른 벼랑에는 넘실 흰 파도 부서지고, 바다에서 솟은 바위는 의젓하게 물을 맞는다.

이 능선길을 ‘기와집몰랑’이라 부른다. 먼 바다에서 보이는 능선의 모양이 기와집 지붕선을 닮았기 때문. 그래서인지 능선에는 기왓장 같이 얇고 넓적한 돌들이 지천이다. 이 돌들로 쌓은 돌탑이 한무리 섰다. 무슨 기원이 그리 많은지.

돌탑을 지나 조금 더 내려오니 호쾌한 바다위로 두툼한 신선바위가 우뚝 솟았다. 바위 위에 놓여진 네모난 돌이 신선이 두던 바둑판이라 한다. 마침 연인 한 쌍이 신선바위 위에서 사랑을 속삭이는데 바다에 부서지는 햇빛과 어우러진 모습이 신선도 샘이 날 만하다. 능선을 다 타고 ‘365계단’으로 내려왔다.

거문도등대가 있는 수월산과는 해수면과 비슷한 높이의 바윗길로 이어졌다. ‘목넘어’라 불리는 이곳은 파도가 거셀 때 바닷물이 넘어온다. 수월산(水越山)의 이름도 여기서 연유한다.

수월산 벼랑을 따라 등대까지 이어지는 1.2km 산책로가 바로 환상의 동백터널이다. 빼곡이 찬 동백나무가 하늘을 가린 채 붉게 타올랐다. 떨어져도 아름다운 동백꽃. 바닥에 붉은 동백 카펫을 깔았다.

길의 끝 거문도등대는 올해로 100살. 등대는 남해안의 망망대해를 굽어보며 지금껏 등불을 밝혀왔다. 아쉽게도 등대까지는 들어가지 못한다. 올 12월까지 등대 개선사업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기존의 등대는 놔두고 그 옆에 새로 전망대를 갖춘 33m 높이의 등대를 새로 짓는 공사로 일반인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서도의 맞은편 끝에 있는 녹산무인등대는 거문도등대를 보지 못한 아쉬움을 달랠 만하다. 고도에는 영국군 묘지가 있고 일본이 중국땅과 통신연결을 했던 ‘해저케이블 육양지’가 있다.

거문도(여수)=글·사진 이성원기자 sungwon@hk.co.kr

■ 39개 섬·섬·섬 ‘바다위 금강산’

백도 = 거문도에서 동쪽으로 28km 가량 떨어진 백도는 바다에 잠긴 금강산. 39개의 크고 작은 무인도로 이뤄진 이 섬은 왕관바위 매바위 석불바위 형제바위 등 기묘한 바위들이 관광객들의 넋을 빼놓는다. 바다에 잠긴 것 까지 99개 섬이라고 백(百)에서 하나 뺀 '백도(白島)'라 이름 붙여졌다고도 한다. 이름만큼이나 백도는 눈부시도록 하얗다. 수중에는 붉은 산호가 무리지어 자라고 있어 섬 전체가 생태계의 보고다. 섬을 보호하기 위해 상륙이 금지돼 있다. 거문도에서 비정기적으로 유람선이 뜬다. 소요시간은 2시간. 요금은 1만8,000원~2만원. (061)663-2824

■ 여행수첩

●거문도 가는 길 여수항여객터미널에서 거문도 가는 여객선이 뜬다. 오전7시40분에 출발해 손죽도 등을 거쳐 거문항까지 2시간 걸린다. 거문도에서 돌아오는 배는 오후3시 출발한다. 3월부터는 오전, 오후에 한번씩 하루 2회 출항한다. 요금은 편도 2만8,200원. (061)663-2191. 고흥군 녹동항에서도 거문도 가는 배를 탈 수 있다. 녹동항 출발이 오전8시. 거문항 출발은 오후4시다. 여수보다 가까워 55분 걸린다. 3월부터 하루 2회씩 증편. 요금 편도 1만9,000원. (061)663-2824

●어디서 잘까 거문도의 중심지는 거문항이 있는 고도. 여객선터미널 주변에 여관들이 밀집해 있다. 여수시에는 오동도 주변에 여수파크관광호텔 (061-663-2334), 여수관광호텔 (061-662-3131), 샹보르관광호텔 (061-662-6111) 들이 몰려있고 여수시외버스터미널 앞에는 깔끔한 여관들이 모텔촌을 이루고 있다.

●뭘 먹을까 여수도 남도의 맛자랑에선 커다란 한 축이다. 여수한정식은 생선회한정식. 싱싱한 회 등 해산물이 한상 가득 푸짐하다. 여수의 장어구이, 장어탕은 전국적으로 명성이 높다. 매콤하게 양념해 무친 서대회도 일품이다. 돌산도는 갓김치로 유명한 곳으로 도로변에 갓김치 판매장이 즐비하다. 여수시민들은 장어구이는 칠공주식당(061-663-1580), 서대회는 모노식당(061-662-0292) 등을 손꼽는다.

■ 여수 | 다른 가볼만한 곳 - 향일암 일출은 남해 으뜸…지척엔 검은 모래 찜질 명소

거문도의 동백에 흠뻑 취했다고 오동도의 동백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는 일. 오동도는 남해안 제일의 동백섬을 자부하는 곳이다. 토끼 모양의 아담한 이 섬은 700여m의 방파제로 육지와 이어졌다. 이 방파제 길을 바닷바람 맞으며 걷는 게 제 맛이지만 따분하다면 매표소와 오동도를 오가는 ‘동백열차’을 이용하면 된다.

섬을 덮은 2,600여 그루의 동백이 10월말부터 4월까지 꽃을 피운다. 꽃은 피고 지기를 반복해 절정의 시기가 따로 없다. 충무공이 임진왜란때 화살을 만들어 왜구를 물리쳤다는 시누대 군락지도 이색적이다. 한 겨울에도 푸르름을 자랑하는 시누대 군락은 사각거리며 거센 해풍을 속으로 삭인다. 오동도 등대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꼭대기까지 오를 수 있다. 다도해의 멋진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입장료 어른 1,600원, 학생 600원, 어린이 300원. 동백열차 탑승료는 500원. 오동도관광안내소 (061)664-8978

돌산대교로 연결되는 돌산도 또한 놓칠 수 없는 곳. 우리나라 섬 중 7번째로 크다. 도로변 동백나무 가로수가 탐스럽게 피어 반긴다. 섬의 남쪽 끝에는 남해안 제일의 일출명소 향일암이 있다. 신라시대 원효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며 우리나라 4대 관음 기도 가운데 하나다. 매년 1월이면 신년을 기원하는 이들로 향일암의 새벽은 북적거린다.

돌산도 서편 금봉리 앞바다는 오밀조밀한 여수 바다를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곳. 바다 가득 들어찬 나무로 엮은 굴 양식대가 조금마한 섬들과 어울려 훌륭한 하모니를 이루고 있다. 주변은 이 굴을 바로 구워먹는 가게들로 즐비하다. 여수에서 굴구이거리로 유명한 곳이다.

오동도 마래터널을 지나 조금 올라가면 만성리해수욕장이다. 해변이 검은 모래밭이다. 이 검은모래 찜질이 몸에 좋다고 해서 여름이면 전국에서 관광객이 몰려든다.

시내 한복판에 있는 진남관은 국보 제304호. 충무공이 전라좌수영 본영으로 쓰던 곳인데 임진왜란이 끝난 뒤 삼도수군 통제사 이시언이 75칸의 대규모 객사로 다시 지었다. 현존하는 국내 최대 단층 목조건물이다.

화양면의 22번 도로는 새로 뜨는 환상의 드라이브길이다. 가막만을 따라 이어져 차창너머로 바다를 호쾌하게 껴안을 수 있다. 조선시대에 배를 만들던 곳 ‘선소’와 소호요트경기장 등과 이어진다. 여수시청 관광홍보과 (061)690-2225

여수=이성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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