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가족이 함께 식사를 하던 중 아들녀석이 친구 이야기를 꺼냈다. 건담 로봇을 몹시 갖고 싶어했던 친구는 세뱃돈을 모아 그 로봇을 사려고 했지만 가격이 너무 비싸서 그러지 못했다는 것이다. 아들녀석은 그 친구 때문에 하루종일 마음이 불편했던지 자기 세뱃돈을 조금 나눠주고 싶다는 얘기를 했다.
듣고 있던 아내가 "건담 로봇이 얼마나 하는데? 세뱃돈은 얼마를 받았는데?" 하고 묻자 아들은 로봇은 3만원이고, 자기가 받은 세뱃돈은 2만5,000원이라고 대답했다. 아내는 "어려운 친구를 돕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돈을 함부로 쓰는 것은 나쁜 버릇"이라며 돈의 가치에 대해 일장연설을 늘어놓았다.
그날 밤 아들녀석의 얘기가 머리 속을 맴돌아 쉽게 잠들 수가 없었다. 3만원은 그 또래 아이들에게는 분명 큰돈이다. 그러나 갖고 싶은 물건을 바라만 보다가 그냥 돌아와야 했을 아이 친구의 모습이 내내 눈에 밟혔다. 아침에 아들녀석의 손에 5,000원을 쥐어주며 "이건 아빠가 주는 세뱃돈이니 그 친구를 돕고 싶으면 그렇게 하라"고 했다. 너무 과하면 돈의 소중함을 알지 못할까 염려돼 5,000원만 줬지만 마음 한구석이 짠했다. 뛸 듯이 기뻐하며 친구네 집으로 달려가는 아들녀석의 뒷모습을 보면서 내 마음은 어느 새 아득한 아들과 같은 나이의 유년으로 되돌아갔다.
그 시절 나는 세배가 끝나기만 하면 주머니 속 세뱃돈을 만지작거리며 친구 영식이네 집으로 달려갔다. 영식이가 나오길 기다리는 동안에도 장난감 권총이며 딱지, 구슬 따위가 머리 속을 맴돌며 지나갔다. 우린 서로 세뱃돈을 자랑하며 눈 덮인 신작로를 따라 장터로 가 장난감 가게 앞을 기웃거렸다. 그땐 왜 그렇게 갖고 싶은 것도 많았던지. 욕심나는 장난감보다는 주머니 속 돈이 부족하기 마련이어서 돌아오는 길에는 늘 아쉬움이 남았다. 지난밤 아들녀석의 이야기가 그래서 더 잊혀지지 않았나 보다. 갈수록 이기적이고 각박해져 가는 요즘, 친구를 생각하는 아들 녀석의 따뜻한 마음이 고맙고도 기특했다. 갖고 싶은 장난감을 돈이 모자라 포기해야만 했던 그 아이의 기억에 친구의 마음이 좋은 추억으로 하나 더 얹혀지기를….
정의양·서울 송파구 풍납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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