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 개봉했던 영화 ‘아이, 로봇’의 배경은 2038년도 지구. 편리한 로봇에 길들여진 인간들은 타인보다 로봇을 믿게 되고, 로봇은 곧 종이며 상전이며 동반자가 되어버린다. 왕자웨이 감독의 영화 ‘2046’. 2046년의 가상공간에서 펼쳐지는 로봇과의 교감이 등장한다. 외롭고 지친 인간은 타인에게서 받을 길 없는 온기를 느껴보려고 로봇에게 안기지만, 허무할 뿐이라는 독백이 흐른다. 점점 개인화, 첨단화하는 사회에서 최고의 경쟁력은 과연 무엇일까? 그런 사회에서 우리가 원하는 ‘맛있는 밥’이란 곧 ‘정이 오가는 식사’가 아닐까?
◆ 굴튀김
아버지가 도쿄로 출장 가셨을 때 일이다. ‘자꾸로’라는 유명한 샤브샤브 전문점에서 식사를 하게 되었단다. 정식을 기다리며 맥주를 마시던 아버지는 안주삼아 ‘굴카츠(굴에 빵가루 묻혀서 튀김)’를 주문했고. 피로에 속이 좋지 않았던 그는 혹 ‘타바스코(매운 고추 소스)’가 있는지를 물어보았다. 매니저로 보이던 나이 지긋한 할머니는 알아보겠노라고 답하고는 잠시 후 다시 돌아왔는데, 그녀의 손에는 ‘칵테일 소스(데친 새우를 찍어 먹는 서양식 매콤한 전채 소스)’ 가 들려있었다. 이유인즉, ‘자꾸로’에는 타바스코 소스가 없어서 근처의 이탈리안 식당까지 뛰어가 비슷한 맛의 소스를 얻어왔다는 것이었다. 자 이쯤 되면 ‘고객감동’이라는 말이 절로 나오지 않겠는가. 타바스코 따위는 없다고 잘라 말했음직한 상황이었을 바쁜 시간에, 고객의 요청에 근접한 서비스를 주기 위하여 잰걸음을 했을 매니저 말이다. 모르긴 해도 그날 이후 ‘자꾸로’의 맛은 샤브샤브 이상의 맛으로 아버지의 마음속에 남았을 터이다.
◆ 스테이크
학창시절, 배낭여행으로 프랑스에 갔었다. 일정 내내 안 먹고 안 쓰며 버틴 결과로 귀국 전날, ‘뤼까 까르통’이라는 파리 최고의 레스토랑에 갈 수 있게 되었다. 과연 파리에서 가장 우아한 레스토랑이라는 그 곳은 아르데코풍의 인테리어며 중후한 인상의 스태프들까지 모든 것이 완벽히 어우러지는 그림 같은 곳이었다. 그 음식 맛은 차치하고서라도, 일단 서비스 때문에 나는 황홀경에 빠져버렸는데. 손님에 비해 월등히 많은 수의 웨이터를 보유하고 있는 고급 식당답게 한 테이블 당 헤드 웨이터, 서브 웨이터 두어 명, 접시 치우는 막내 웨이터에다가 총괄 매니저와 소믈리에가 기본으로 배정 되니 대 여섯 명의 시중을 받으며 동양에서 온 공주처럼 식사를 했던 그날의 감동이 훗날 내가 프랑스 요리를 수학하고 요리사가 된 계기였다 해도 무리가 아니다. 아무튼 당시로서는 체계적인 요리법을 몰랐던 나였으므로 다소 황당한 요구를 하게 되었다. 메인으로 나온 고기 요리의 ‘소스’가 모자란다는 말을 했던 것이다. 여기서 잠깐 설명하자면, 프랑스 요리에서 ‘소스’를 만들 때에는 해당 메뉴에 이용하는 고기를 팬에 구운 후 눌어붙게 되는 진액을 긁어모아서 시작 한다. 따라서 소스를 더 만들기 위해서는 이에 상응 하는 양의 고기를 팬에 굽고, 육수와 와인으로 눌어붙은 진액을 긁어내고 하는 일련의 과정을 다시 반복 했어야 하는 것. 이런 상황에서 레스토랑 측은 ‘yes’를 했고, 여분의 소스를 더 만들어다 주었다. 십여년 지나서 요리사가 된 지금 돌이켜 보면 참으로 귀한 배려였던 것이다.
내 밥을 챙길 겨를조차 없는 날에는 바지런한 주인이 있는 백반 집에 들르게 된다. 투박한 말투여도 반겨주는 마음이 보이는 ‘남원식당’의 돼지 불고기, ‘으악새’ 포차의 막창, 청담동 뒷골목의 오뎅은 정으로 입맛을 당기는 메뉴들. 편의점의 반만큼도 물건이 없는 ‘정마트’의 주인아저씨나 동전이 없는 날 백 원 깎아 주는 은행 옆 토스트 아줌마도 정 때문에 보게 되는 사람들이다. 모 특급호텔 2층에서 우아한 서비스에 매진하는 중식당 스태프들이나 ‘멋진 와인’이라는 내 말에 그 라벨을 떼어내 챙겨 준 어느 와인 바의 사장님도 ‘맛’에 더하는 ‘서비스’로 입맛과 마음을 동시에 사로잡은 이들이다. 외로운 미식보다는 훈훈한 밥 한 공기가 반가운 것은 2038년이, 2046년이 그리 멀지 않았음을 암시하는 것이 아닐지. ‘서비스’는 ‘정’이며, ‘정’은 금세기 최고의 맛으로 곧 자리매김할 것이다.
푸드채널 '레드쿡 다이어리' 진행자
◆ 굴튀김
굴, 빵가루, 달걀, 튀김가루, 소금, 후추
1 굴은 깨끗이 씻어서 물기를 뺀다.
2 1에 소금, 후추로 밑간을 한 후 달걀 푼 물을 묻힌 후 튀김가루, 빵가루를 손으로 묻힌다.
3 튀김용으로 뜨겁게 달군 기름에 2를 두 번 튀겨낸다.
4 타바스코 소스나 칠리소스 혹은 마요네즈와 다진 양파를 섞은 타르타르 소스와 곁들인다.
◆ 통후추소스 스테이크
스테이크용 고기 300g, 버터 70g, 육수 1/3컵, 레드와인 1/4컵, 통후추, 소금, 샐러리 30g, 대파 30g, 양파 30g, 허브
1 스테이크 고기에 소금, 후추로 밑간한 한 후 버터에 겉만 지져낸다.
2 1에서 사용한 고기를 지진 팬에 양파, 대파, 샐러리를 넣고 볶는다.
3 2에 육수와 레드 와인을 붓고 허브와 통후추를 넣은 뒤 걸쭉하게 조린다.
4 1의 고기를 오븐이나 팬에서 다시 한번 바짝 구워낸다.
5 3의 소스를 체에 거른 후 고기와 함께 담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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