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백, 매화, 산수유꽃, 벚꽃으로 이어지는 봄의 향연이 시작된다. 형형색색으로 피어나는 꽃들의 잔치에 당분간 나그네의 눈은 즐거울 터이다. 하지만 잔설와 얼음이 뒤덮인 칙칙한 빛깔의 산하에서도 어김없이 봄의 전령을 만날 수 있다. 고로쇠수액이 주인공이다. 이달 초 한반도의 동남단 거제에서 시작된 고로쇠수액 채취행사는 경남 밀양의 백운산, 지리산, 덕유산을 거쳐 충청 괴산, 강원 정선으로 릴레이를 펼친다.
고로쇠는 골리수라는 한자어에서 유래했다. 뼈(骨)에 이롭게(利) 하는 나무(樹)라는 뜻이다. 재미있는 전설이 전한다. 신라말 도선국사가 전남 광양의 명산 백운산에서 참선을 하다가 일어서려는 순간, 무릎이 펴지지 않았다고 한다. 이 때 인근에 있던 고로쇠나무에서 수액을 받아 마셨더니 무릎이 펴졌다.
고로쇠는 단풍나무의 일종이다. 가을에 만산홍엽으로 물들며 여행객을 마을을 들뜨게 만들었지만 겨우내 황량한 가지만 드러낸 흉물스런 나무로 취급 받았다. 요즘은 몸에 좋다는 소문과 함께 웰빙 시대 고급 먹거리로 각광 받으면서 새삼 귀하신 몸으로 대접 받고 있다.
남덕유산 자락인 경남 거창군 북상면 월성마을. 해발 700m고지에 위치, 흔히 ‘하늘마을’로 불리는 이 곳에도 본격적인 고로쇠수액 채취 시즌이 돌아왔다. 마을이름은 인근 월성계곡에서 따왔다. 덕유산 삿갓골샘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굽이치면서 절경을 빚어낸다. 고로쇠수액 채취 현장으로 가는 길이 심심치 않은 이유이다. 계곡을 따라 간간이 고로쇠나무가 들어서있다. 계곡 위로 경사진 산비탈을 거슬러 오르면 아름드리 나무들이 위용을 드러낸다. 햇볕이 잘 들어오는 양지에 위치한 나무들은 제법 풍부한 수액을 뿜어낸다. 채취한 지 3일 이내에 받아낸 수액이 최상급으로 알려져 있다. 계란으로 치자면 초란에 해당한다.
언제부터 이 마을에서 고로쇠수액이 채취됐는지는 정확하지 않다. 이미 100여 년 전에도 고로쇠수액을 마셨다는 마을 어른들의 이야기도 전한다. 본격적인 채취가 시작된 것은 불과 10년 안팎. 한동안 거제, 지리산, 백운산 등의 명성에 밀려 빛을 보지 못했다. 덕유산 고로쇠가 낯설었던 탓이다. 하지만 주민들의 긍지는 남달랐다. 일교차가 커야 좋은 고로쇠수액을 얻을 수 있다는 정석에 부합하는 환경을 갖췄기 때문이다. 이 일대 암반은 화강암과 맥반석 재질이 많아 게르마늄을 풍부하게 함유하고 있다는 것도 타 지역 고로쇠와 다른 점이다. 이런 조건 때문에 이 일대 고로쇠수액은 물맛이 좋고 당도가 높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면서 덕유산 고로쇠수액을 찾는 사람이 늘어났고, 마을의 새로운 부업거리로 등장했다. 현재 수액채취에 나선 주민은 80여명. 지난 해에만 4억원 가량의 수익을 올렸다. 1년 벼농사를 지어 추곡수매한 돈과 맞먹는 액수이다. 앙상한 가지만 남아있던 볼품없는 나무가 효자나무로 등장한 것이다.
신이 난 주민들이 축제도 마련했다. 19일부터 20일까지 월성 청소년수련원 일대에서 열린다. 그냥 보는 행사가 아니라 관광객이 참가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기다린다. 마침 대보름을 앞두고 있어 달집태우기 행사도 마%련했다. 영화상영, 별자리관측 등도 준비된다. 고로쇠수액 채취에 참가할 수도 있다. 고로쇠를 활용한 퓨전요리 만들기, 고로쇠 주스 시음, 고로쇠양초 만들기 등 아이디어도 재미있다. 거창의 대표적 농산물인 딸기 따기 체험행사도 연계했다. 축제 기간 이후에라도 3월말까지 마을을 찾으면 고로쇠수액을 구입할 수 있다. 18ℓ들이 5만 원, 4.3ℓ 1만 5,000원. 거창군사이버농원운영위원회 (055)945-1551.
거창=글·사진 한창만기자 cmhan@hk.co.kr
■ 고로쇠가 왜 몸에 좋나/ 칼슘등 풍부… 관절염·위장병에 효과
고로쇠가 뼈에 이롭다고 하는 데 사실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다. 고로쇠수액에는 당분을 비롯, 칼슘, 칼륨, 망간, 마그네슘 등 무기성분이 많다. 이들 성분이 뼈에 좋은 것은 당연하다. 이 뿐이 아니다. 위장병, 신경통, 관절염에도 효험이 있다. 잎은 지혈제로, 뿌리껍질은 관절염이나 골절치료에 사용되기도 한다. 고로쇠수액이 생기는 이유는 일교차와 관련이 크다. 기온이 내려가는 밤이면 나무줄기가 수축되면서 속에 공간이 생긴다. 이 때 뿌리로 물을 빨아들여 줄기속을 채우게 된다. 반면 낮에 온도가 올라가면 줄기속의 물과 공기가 팽창, 밖으로 나오려고 해 나무껍질을 긁으면 수액이 밖으로 흘러나온다. 단풍이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신호라면, 고로쇠수액은 겨울에서 봄으로의 계절변화를 의미한다.
일교차의 영향에 따라 맛도 다르다. 수액채취의 위치가 높을수록, 일교차가 클수록 당도가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고로쇠수액이 몸에 좋다는 사실은 도선국사의 전설에서 알려져 있지만 농가소득증대를 위해 체계적으로 채취가 시작된 것은 약 20년 전 지리산 일대가 처음이다. 처음에는 나무껍질에 V자 홈을 내 수액을 받아냈다. 요즘은 환경훼손논란이 많아 드릴로 조그만 구멍을 낸 뒤, 수액을 받아낸다. 수액에 많은 성분이 포함돼있어 냉장 보관하는 것이 좋다. 혹 수액이 상하면 버리지 말고 화분에 물을 주는 용도로 활용해도 된다. 우수를 전후해 채취한 수액의 품질이 가장 좋다. 남부지역은 경칩을 전후로 채취작업이 마무리된다.
한창만기자
●전국 고로쇠수액판매 문의처
경남 거제시 관광진흥과 (055)639-3363
경남 거창군 사이버농원운영위 (055)945-1551
경남 하동군 고로쇠수액생산자협의회 (055)883-1802
전남 광양시 산림과 (061)797-3575
전남 장성군 가인마을 (061)392-7790
%전남 장성군 남창마을 (061)393-9896
충북 영동군 환경산림과 (043)740-3441
경기 남양주시 내방리 고로쇠마을 (031)591-9389
팔현리 고로쇠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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