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우리나라 사람들이 희로애락을 안주 삼아 마셔댄 소주는 사상 최고치인 10억8,183만3,000ℓ로, 흔히 먹는 360㎖들이 병으로 30억509만병을 넘었다는 통계가 얼마 전 나왔다. 20세 이상 성인을 3,500만명으로 잡으면 1인당 평균 90병 가까이 마셨다는 얘기인데, 이 가운데 50병은 진로였다고 할 수 있다. 작년 말 기준 진로의 시장점유율은 55.4%로, 금복주(10.0) 대선(8.5) 무학(8.1) 보해(6.0) 두산(5.3) 등 나머지 9개사를 압도하는 독점적 지위를 누리고 있다. 특히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에선 점유율이 무려 90%에 달한다.
■ 지금은 ‘참이슬’로 더 잘 알려진 진로의 브랜드 파워는 무리한 사업확장과 계열사 지급보증 여파로 1997년 부도난 이후 법정관리를 받아오면서도 조금도 훼손되지 않아 음식료와 주류를 통틀어 코카콜라와 쌍벽을 이룬다. 주류도매상들이 지금도 100% 현금이 아니면 진로를 구입하지 못하는 이 같은 파워는 전 세계적으로도 보기 드물다. 런던 올림픽에 출전한 ‘진로 두꺼비’가 선진국의 여러 양주와 겨뤄 승리한 후 환호하는 내용의 애니메이션과 "야야야 야야야 차차차…"라는 경쾌한 노래가 겹쳐지는 CM은 굴곡 많은 우리 현대사와 오버랩되며 아련한 향수에 젖게 한다.
■ 이런 진로가 올해 M&A(인수합병) 시장의 최대 매물로 나와 14일까지 인수의향서 신청을 마감한 결과 롯데칠성 두산 CJ 동원 대상 하이트맥주 무학 등 내로라하는 식품·주류업체는 물론 태광산업 대한전선 등의 알짜 기업과 해외 투자펀드까지 모두 14개 컨소시엄, 40~50개 기업이 눈독을 들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진로의 지난해 순 매출액(주세 제외)은 7,300억원 남짓이지만 영업이익률은 제조업 평균의 3배를 넘어 30%에 이르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이기 때문이다.
■ 진로 창업주 우천 장학엽 선생은 1924년 평안남도에서 처음 사업을 시작할 당시 서북지방에서 복신(福神)으로 떠받들던 원숭이를 상표로 했으나 1954년 서울에서 사업을 재개할 때 원숭이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자 동물사전을 펼쳐 놓고 고심하던 끝에 두꺼비를 새 심볼로 결정했다고 한다. 강한 번식력과 장생, 맑고 유순하며 믿음직한 이미지가 마케팅 포인트에 딱 들어맞았던 까닭이다. 이제 그의 자식들은 부친의 유지를 지키지 못한 자괴감에 또 한 번 시달리겠지만 반세기 이상 서민들의 애환을 달래 준 두꺼비가 새롭게 탄생하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이유식 논설위원 yslee@h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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