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에게 ‘타이타닉’의 아름다운 미소년과 같은 이미지만 있는 건 아니다. 그는 배우 생활 초기에 ‘길버트 그레이프’ 등에서 외모 이전에 연기력으로 평가 받았던 시절이 있었다. ‘타이타닉’ 이후에는 십대들의 아이돌이 됐고, 그 찬란한 위치는 그에게 부를 안겨준 만큼이나 배우로 전진하는데 발목을 잡는 함정이 됐다.
몇 년 간 휘청거리던 디카프리오는 마틴 스코시즈나 스티븐 스필버그 등의 대가 감독과 함께 작업하면서 또 다른 전기를 모색하려 든다. 미국의 전설적인 백만장자 하워드 휴즈의 일대기를 그린 ‘에비에이터’에서 그는 앳된 얼굴과 목소리로 제법 선이 굵은 한 인간의 명암을 실감나게 연기한다. 명연이라고는 하지 못하겠지만 열연이라고는 할 수 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너무 일찍 거대한 부를 거머쥔 하워드 휴즈의 인생은 곧 그의 인생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에비에이터’를 연출한 스코시즈 감독에게 이 소재는 궁합이 맞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갱스 오브 뉴욕’에 이어 두번째로 디카프리오와 함께 작업한 스코시즈는 이 영화의 연출을 디카프리오의 의뢰로 맡았다.‘비열한 거리’나 ‘좋은 친구들’ ‘카지노’ 등의 영화에서 뒷골목 인생을 다루는데 능했던 스코시즈에게 상류사회의 스타를 다루는 건 낯선 일이다. 실존 복서의 일대기를 다룬 ‘성난 황소’와 같은 영화에서 바닥까지 내려가는 인간의 영혼을 다룬 적이 있지만, 이 영화의 경우에는 사정이 다르다.
항상 앞으로 내달리기만 했던 인간의 전기를 다루면서 그는 여러모로 충돌을 드러내며 결국에는 매끈하게 봉합한다. 1930년대 할리우드에서 소문난 괴짜 영화제작자였던 휴즈의 삶을 그는 찬탄에 차서 바라본다. 모험적인 비행사이자 항공사 경영주였던 휴즈의 기질을 미국적인 영웅의 기준으로 찬양하기도 한다. 그러나 동시에 늘 앞으로 내달릴 수밖에 없었던 자가 스스로 만든 자기만의 왕국이자 감옥에 갇혀 청결 강박증에 시달리던 모습도 담아낸다. ‘에비에이터’는 그 모든 하워드 휴즈의 삶의 자취를 다루는 가운데 성공의 정점에서 어두운 그늘을 드러내는 지점에서 끝난다. 감독과 배우 모두 적당히 만족스러운 결과물이었겠지만 좀 길다.
알렉산더 페인의 ‘사이드 웨이’는 제목 그대로 격렬한 인생의 사잇길에서 와인과 이성에 취해 수다를 떨며 삶의 쾌락과 페이소스에 취하게 만드는 아기자기한 소품이다. 어른들을 위한 영화이며 잘 익은 와인 같은 맛을 주는 등장 인물들의 대사가 마음에 콕콕 박힌다.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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