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9년 2월17일 프랑스 군인 프랑수아 드 로렌 기즈가 바르에서 태어났다. 구교도를 이끌고 위그노전쟁을 치르다 1563년 오를레앙 근처에서 신교도(위그노)에게 암살된 그는 젊은 시절 이탈리아 원정 중에 이마에 상처를 입은 탓에 ‘발라프레’(le Balafre: 얼굴에 칼자국이 있는 사람)라고 불렸다. 한자어권에서는 이 별명을 흔히 ‘금창공(金瘡公)’으로 번역한다. 프랑수아 드 로렌 기즈는 앙리2세 시절 신성로마제국 카를5세의 군대에 맞서 메스를 지켜내고, 프랑스 내 잉글랜드 최후의 거점인 칼레를 탈취한 무장이었다. 조카사위인 프랑수아2세가 즉위한 뒤에는, 국왕의 모후이자 섭정이었던 카트린드메디시스와 함께 프랑스 정치를 쥐락펴락했다.
기즈가(家)는 16세기 프랑스 최고의 권문세가였다. 로렌 출신의 이 가문이 프랑스 정치의 중심부에 진입한 것은 자크리의 난을 진압한 클로드 드 로렌 기즈(1496~1550)부터다. 오늘의 주인공 프랑수아 드 로렌은 그의 맏아들이다. 프랑수아 드 로렌 기즈의 맏아들 앙리 드 로렌 기즈(1550~1588)도 아버지 못지않은 실력자였다. 그는 아버지를 따라 참가한 위그노전쟁에서 얼굴에 부상을 입어, 아버지처럼 ‘발라프레’라고 불렸다. 기즈 가문에는 ‘금창공’이 둘이었던 셈이다. 클로드 드 로렌이 국왕 프랑수아1세에게 받은 작위가 장남들에게 계속 이어졌던 터라, 이 3대를 구별해 일컬을 땐 이름 대신 초대 공작 기즈, 2대 공작 기즈, 3대 공작 기즈로 부르기도 한다.
프랑수아 드 로렌 이래 기즈가 남자들은 위그노에 대항해 조직된 가톨릭동맹 ‘리그’의 지도자로 활약했다. 신교 쪽에 기울어져 있던 국왕 앙리3세에 맞서 싸우다 죽은 앙리 드 로렌 기즈와 그의 동생 루이 드 기즈(1555~1588)의 예에서 보듯, 이 집안 남자들은 대체로 종교 전쟁 와중에 전사했다.
고종석 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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