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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생각] 대통령 단임제는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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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생각] 대통령 단임제는 옳다

입력
2005.02.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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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에 대한 평가가 그의 치세를 겪어보지 못한 세대에서까지 사뭇 후한 이유는 (실제로 그가 쓸만한 지도자였을 가능성까지 포함해서) 여럿이겠지만, 그 가운데 하나는 장기집권에 힘입어 그가 충순한 친구들을 수두룩하게 만들어놓았다는 데 있을 것이다. 철권을 휘두르던 18년 동안 박정희는 다양한 영역의 물질적·상징적 자본을 추종자들에게 분배했고, 그 자본의 수혜자들은 오늘날 정관계 같은 경성권력의 처소만이 아니라 학예술계·언론계·교육계 같은 연성권력의 처소에까지 똬리를 튼 채 박정희에게 호의적인 여론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가 죽은 뒤에 흐른 세월이 집권 기간보다도 길다는 점을 들어 이런 견해를 논박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박정희가 죽은 뒤에도 군사정권이 이어졌다는 사실을 지나쳐선 안 된다. 전두환·노태우 정권의 실속은 ‘박정희족(族)’으로 채워졌고, 그래서 박정희는 1979년 10월 육체적으로 죽은 뒤에도 1993년 2월까지는 (일종의 유훈통치로서) 한국을 실질적으로 지배한 셈이었다.

김영삼은 임기 말의 외환위기 탓에 박정희 향수를 불러일으킨 당사자로 흔히 지목되지만, 한국 권력의 핵심부에 박정희족 바깥 사람들이 진입하기 시작한 것은 그의 치세에 들어서였다. 취임하자마자 정치군부를 과감히 숙정함으로써, 김영삼은 외과 수준에서나마 박정희족의 생식선(生殖腺)을 제거했다. 그 점에서 김영삼은, 비록 국가수반으로서 너무 무능하고 이기적이고 독선적이었다고 비판 받기는 하지만, 한국에 정치적 자유주의의 바탕을 마련한 용기있는 지도자이기도 했다.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를 거치며 박정희족은 정치권력의 복판에서 많이 밀려났다. 그러나 그들은 투박한 군복을 세련된 연미복으로 갈아입은 채, 파티장만이 아니라 강단과 연구소와 대기업 중역실과 세미나실과 편집실에서, 여전히 박정희의 성인전(聖人傳)을 써대며 그 시대의 끔찍함에 대한 상상력을 차단하고 있다. 생존과 번식을 위한 싸움은 모든 생물체의 일차적 본능이므로 그것을 비난할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서 얻어야 할 교훈이 있다. 장기집권은 지배종족의 크기를 너무 비대하게 만들어 역사의 진화를 훼방놓는다는 사실 말이다.

민간정부라고 예외는 아닐 것이다. 김대중 정부의 고위 관료는 김대중이 사라진 뒤에도 김대중의 친구로 남을 가능성이 높고, 노무현 정부의 국영기업체 경영자는 노무현이 사라진 뒤에도 노무현의 친구로 남을 가능성이 높다. 더 나아가 그들은 김대중이나 노무현의 (공적으로) 나쁜 측면까지도 감쌀 ‘사악한 패거리’가 될 가능성이 높다. 결국은 자기보호 본능의 현현(顯現)에 지나지 않을 이런 ‘인연의 보전’을 인간세상의 윤리는 ‘의리’라는 이름으로 두둔하기까지 한다.

우리 사회의 우익 만담가들이 떠벌리고 집권세력 일부가 철없이 동조하는 것과 달리, 노무현 정부 이후 이른바 ‘지배세력 교체’가 일어난 것은 결코 아니다. 혁명이 일어나지 않는 한, 지배세력의 의미있는 교체는 불가능하다. 아니 우리가 혁명이라고 부르는 세계사적 사건들도, 그 속살을 들여다보면, 지배세력을 바꾸지는 못했다. 단지 지배세력의 옷을 갈아 입혔을 뿐이다. 변화의 구호로 목이 쉰 노무현 정부의 핵심 권력자들이 전통적 엘리트층에서 충원되고 있는 것은 그래서 조금도 놀랄 일이 아니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가 아니었다면 재야에 남아있었을 몇몇 비주류적 개인들이 이 정부에서 중용된 것은 사실이고, 권력의 분배라는 측면에서 민주주의가 그만큼은 진전했다고 볼 수도 있겠다. 중요한 것은 권력자의 사악한 패거리를 양산할 장기집권의 문을 닫아놓는 것이다. ‘야합’의 산물이었든 뭐든, 대통령 단임제는 옳다. 혹여 개헌론으로 마음이 들뜬 정치인들은 지난 한 해 동안의 국회 몰골이나 되돌아보는 것이 좋겠다.

고종석 논설위원 aromachi@hk.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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