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정부는 출범과 함께 언론과의 부적절한 관행을 개선하겠다며 개방형 브리핑제를 핵심으로 부처별 기자실 통합, 출입기자 등록제, 기자들의 사무실 직접 취재 금지 등 취재시스템의 대수술에 나섰다.
2003년 4월 청와대를 시작으로 같은 해 9월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12월 정부 과천청사의 경제부처에 이어 지난해 5월 사회부처가 차례로 ‘수술’을 받았다. 시스템 개편으로 어떤 언론사든 요건만 갖추면 취재할 수 있는 ‘열린 취재’가 가능해졌다. 또 정부와 언론의 거리 두기로 권언유착과 그로 인한 폐해가 줄었다는 평가도 있다. 그러나 후유증 또한 만만치 않다.
◆ 정례 브리핑은 개방형? 폐쇄형? = 정부는 기자들에게 사무실 출입을 봉쇄하는 대신 신속하고 자세하게 업무를 설명하겠다며 2003년 9월 개방형 브리핑제를 시작했다. 장·차관은 주 1회 이상, 실·국장은 수시로 브리핑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정부의 약속은 구두선이었다. 국정홍보처와 21개 부처 공보관실의 자료에 따르면, 지난 한 해 부처별 장·차관 브리핑은 1주 평균 0.5회에 그쳤다. 주 1회 이상 브리핑을 실시한 부처는 전혀 없었다. 심지어 모 부처 장관은 지깟난해 6월부터 12월까지 단 한 차례도 출입기자 앞에서 마이크를 잡지 않았다. 실·국장의 브리핑 역시 주 1.5회에 불과했다.
부실한 브리핑 내용은 더 큰 문제다. 대부분 미리 배포된 보도자료에 나온 내용을 반복하고 있는데다 관심 현안에 대한 밀도 있는 설명은 들을 수 없다. 특히 장관 브리핑은 부실의 결정판이다. 과천청사에 출입하는 한 중견기자는 "브리핑을 갈 때마다 앵무새처럼 보도자료만 읽어 괜히 왔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고 말했다. 모 부처 공보관실 관계자는 "연말 부처별 업무 평가에 브리핑 내용보다는 횟수를 반영하다 보니 횟수를 늘리는데 주력한다"고 털어놓았다.
정부가 알리고 싶은 것만 골라서 알리는 점도 심각하다. 지난해 5월 불거졌던 주한미군 병력 재배치 문제가 대표적인 예. 정부는 이미 미국 정부와 이라크 차출을 비롯한 주한미군 병력 이동에 대해 협의했고 정부 내에서조차 "공개해서 여론의 추이를 살피자"는 의견이 있었다. 그럼에도 정부는 "국가안보에 중대한 영향을 끼치는데다 미국측이 꺼린다"며 공개하지 않다 특정언론에 보도가 되는 바람에 뒷수습을 하느라 진땀을 흘렸다.
◆ 취재, 브리핑보다는 인맥에 의존 = 때문에 개방형 브리핑제에 대한 기자들의 반응은 차갑다. 지난해 민주당 손봉숙 의원이 정부기관 출입기자 165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브리핑 횟수와 시기에 대해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응답자가 76.4%, 77.6%에 달했다. 브리핑 내용의 충실도에 대해서는 75.8%가 부정적이라고 답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기자들은 결국 비공식적인 인맥을 통한 정보수집에 기댈 수밖에 없다. 손 의원의 설문조사에서도 기자들이 정부 브리핑(35.2%) 보다는 인맥을 통한 정보(44.8%)에 의존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전문가들은 언론의 취재 제한은 자칫 국민의 알권리 제한으로 이어질 수 있다면서 취재 제한의 완화를 주문한다. 한양대 신문방송학과 이재진 교수는 "브리핑제의 장점인 투명성에 다양하고 심층적인 보도 등 과거 취재 시스템의 장점을 융합시키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며 "정부는 특히 언론학자와 언론계 종사자들의 목소리를 귀담아 들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박상준기자 buttonpr@hk.co.kr
■ 시민은 들어가도 기자는 사절/‘성역’된 靑 비서실
청와대는 현 정부 출범 직후 춘추관 기자실을 모든 언론사에 개방하는 조치를 취하면서 수석·보좌관들의 브리핑 활성화를 약속했다. 대신에 비서실 출입 금지 등 취재 제한 조치도 늘어났다.
취재 제한 조치들은 청와대 직원들의 일터를 언론의 접근이 어려운 ‘성역’으로 만들고 있다. 일반 시민들은 청와대 직원과 약속하면 비서실에 들어갈 수 있으나 기자들의 비서실 출입은 원천봉쇄 됐다. 선진국에서도 기자들이 취재 약속을 하면 대통령 비서실에 들어갈 수 있으나 청와대에선 그럴 수가 없다. 과거 역대 정권에서 기자들의 청와대 비서실 출입이 허용됐으며 DJ 정부 때는 제한된 시간에만 허용됐다.
다수의 언론학자들은 "청와대 직원들이 일하는 모습을 언론이 직접 보는 것은 국민의 알 권리 측면에서 중요하다"면서 "국정 효율성과 보안을 명분으로 언론 출입을 전면 금지하는 것은 있을 수 없으며 제한적으로라도 허용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청와대는 또 지난해 5월부터 청와대 내부 회의를 언론에 공개하는 것도 금지시켰다. 그전까지는 수석·보좌관회의 시작 때 청와대 기자단을 대표한 풀(Pool) 기자 2~3명 가량이 참석할 수 있었으나 청와대는 이 기회 마저 없애 버렸다. 청와대 출입기자들은 단지 국무회의 등 공개 회의에만 순번을 정해 풀 기자로 청와대 본관에 들어갈 수 있다.
그렇다면 수석·보좌관들의 브리핑 제도는 잘 되고 있을까. 전혀 그렇지 않다. 새해 들어 신임 수석, 보좌관들이 인사차 기자실을 찾았을 뿐 소관 업무에 대해 브리핑을 한 경우는 거의 없었다. 때문에 대변인에게 부담이 집중되고 있다. 김종민 대변인은 매일 20분 가량의 백그라운드 브리핑을 통해 다양한 현안에 대해 설명하지만, 구체적 사안에 들어가면 "알아보겠다"는 답변만 해야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다만 대변인 브리핑 활성화와 대통령 기자간담회 횟수 증가는 긍정적 변화다. 노 대통령은 지난 1월 직접 기자실을 찾아 교육부총리 인사 파문 등에 대해 설명한 바 있다.
김광덕기자 kdkim@hk.co.kr
■ 청와대, 부처에 "오보 대응" 압박/ 언론 관여는 여전
1980년대 언론통제로 오명을 남겼던 공보처가 국정홍보처로 바뀐 지 7년. 그 동안 신문방송 관련 행정업무가 문화관광부로 이관되는 등 외양의 변화는 있었다. 그러나 국정홍보처와 청와대 홍보수석실을 중심으로 한 언론 모니터링과 대응 등 새로운 형태의 언론 관여는 사라지지 않았다는 게 일반적 평가다.
정부의 정책보도 모니터링은 건전비판 수용과 오보 대응 등 크게 두 가지 방향으로 나뉜다. 신문과 방송 등에 나온 정부 관련 보도에 대해 각 부처는 건전한 비판일 경우 정책적으로 수용하고 잘못된 보도라고 판단하면 해명, 정정보도 요구, 언론중재신청, 취재거부 등의 조치를 취한다는 것이다.
특히 국정홍보처는 전산망을 이용한 정책보도 모니터링시스템도 마련했다. 국정홍보처가 언론보도를 점검, 건전한 비판과 오보, 왜곡보도 등으로 평가하고 자체 전산망에 올린 뒤 해당 부처의 조치 결과를 기재하도록 했다. 어떤 식으로든 일선 부처가 대응에 나서게 하는 것이다.
한 일선부처 공보관은 "그 동안 언론에 비해 약자였던 정부 입장에서 이제는 대등한 상황으로 바뀌고 있다"며 "잘못된 보도는 바로 잡고 건전한 비판은 수용하는 등 긍정적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현 정부의 대응 방식은 부작용도 낳고 있다. 우선 국정홍보처가 각 부처의 언론보도 대응조치를 수치로 평가한 뒤 업무평가에 반영하는 식으로 압박한다는 비판이 있다. 경찰청이 최근 각 지방경찰청에 ‘공보분야 치안활동 평가방법 개선’ 공문을 내려보내 오보기사에 대응하지 않을 경우 감점 3점을 주겠다고 밝힌 것이 대표적인 경우.
정부는 각 부처의 자율적 대응을 원칙을 내세우고 있지만 신문의 주요 보도에 대해 청와대 홍보수석실이 대응방침을 결정, 각 부처에 지시한다는 지적도 있다. 청와대 홍보수석실은 국내언론비서관실을 중심으로 언론보도에 대한 상시 모니터링 시스템을 가동하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아무래도 위에서 관심을 갖는 문제에는 더욱 강경하게 대응하는 경향이 있다"면서 "상대적으로 여론 수렴보다는 대응이라는 대립성이 중시되는 구조"라고 밝혔다.
정상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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