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판교 신도시 아파트 분양가를 잡기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자칫 판교 분양가를 방치하다가는 전국의 아파트 가격이 들먹거릴 우려가 커 민간 건설업체에게 가격을 한 수 지도하겠다는 것이다. 국민주택규모(25.7평 이하)는 평당 900만원 정도, 중대형(25.7평 초과) 아파트는 평당 1,500만원 이하로 유도한다는 게 건설교통부의 입장이다.
과연 판교의 과열 분위기가 가라앉고 투기의 불씨는 꺼지게 될까.
주택업자들은 판교 중대형 아파트 분양가를 평당 2,000만원 이상으로 책정해도 충분히 팔릴 것으로 보고 있다. 뛰어난 입지조건도 그렇거니와 판교를 ’제2의 강남’ ‘꿈의 신도시’ 로 개발하겠다는 정부의 청사진 발표로 청약 대기자의 기대수준이 한껏 올라가 있기 때문이다. 수요는 많고 공급은 2만9,000여 가구(임대주택 포함)에 불과하니 3,500대 1에 이를 정도로 청약자가 몰릴 것은 당연한 일이다.
게다가 평당 2,000만원짜리 아파트를 1,500만원에 분양한다면 멀쩡한 사람조차 욕심이 생길 것은 뻔한 이치다. 당첨만 되면 그 자리에서 수 억원의 차익이 생기는 기회를 누가 마다할 것인가. 국민주택 규모 이하 아파트가 이미 ‘로또’반열에 들어간 마당이다. 시세의 절반 이하로 아파트를 분양 받을 수만 있다면 그야말로 로또 대박이 부럽지 않은 횡재일 터이다. 정부가 분양가를 낮추면 낮출수록 분양에 따른 기대이익과 시세차익은 더 커지고, 투기의 유혹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뿐이다.
따지고 보면 판교의 투기장화는 시장원리를 무시한 정부의 자업자득 측면이 강하다. 정부는 판교신도시 입안 과정은 물론 아파트 분양자격과 채권입찰제 적용을 둘러싸고 수 차례 정책 혼선을 되풀이했다. 전용면적 25.7평 이하 아파트에 대해서는 분양가상한제(원가연동제)를 도입하고 중대형 평형에는 채권입찰제를 도입한 것은 그렇다고 치자. 분양가가 평당 2,000만원을 웃돌 것이라는 예상이 나돌자 느닷없이 분양가 제한 조치를 들고 나온 것은 생뚱 맞기 그지 없다. 정부 스스로 채권입찰제의 근본 취지를 무너뜨리고 인위적으로 분양가를 묶는 자가당착에 빠진 셈이다. 채권입찰에 상한선을 두면 건설업체들이 택지를 매입하면서 모두 상한가를 쓸 것은 뻔한 일이다. 한국 경제가 살아나지 못하고 있는 것은 한국 관료집단의 시장개입 후유증 때문이라는 국제통화기금(IMF)의 지적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IMF는 최근 한국경제보고서 초안에서 우리나라의 가계 및 중소기업의 부실, 대기업의 투자부진이 ‘언제 어디서E디서나 시장에 개입하는’ 관료집단의 ‘유비쿼터스 핸드’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여기에 부동산대책의 혼선도 추가해야 할 판이다.
고금을 통틀어 사회주의 통제체제를 제외하고 정부가 시장에 개입해 가격을 묶어두려는 시도가 성공한 적은 없다. 수요가 있는 곳에 돈이 몰리는 것은 막을 수 없는 일이고, 수요가 많으면 값이 오르는 것은 상식이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시장원리에 벗어난 간섭이나 시대착오적인 가격지도가 아니다. 가격은 시장의 기능에 맡기고 통장 전매와 같은 불법거래 차단, 전매차익에 대한 철저한 양도세 부과, 투기꾼을 적발할 수 있는 전산 시스템 구축에 힘써야 한다. 투기를 잡아야 한다는 명분을 앞세워 언제까지고 유비쿼터스 핸드를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를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이창민 산업부장 cm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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