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스퍼드 대학 출판부가 펴 낸 ‘현대세계의 전략’은 핵무기 보유 동기를 4가지로 정리한다. 자위적 안보 강화, 전략적 우위 확보, 국민적 자부심 충족, 국위 향상 등이다. 이 4가지는 때로 겹치지만, 주된 동기가 무엇이냐에 따라 외부 영향력으로 핵보유를 억제할 수 있는 가능성도 달라진다. 언뜻 상식과 어긋나는 아이러니는 가장 일반적이고 명분도 크다고 할만한 자위력 확보를 위한 핵보유 정책을 변화시키는 일이 가장 쉽다는 사실이다. 안보 위협에 대한 불안감이 근거 없거나, 핵무장 아닌 대안이 있다고 설득하기가 그만큼 용이하다는 지적이다.
■ 핵보유의 주된 동기가 전략적 우위 확보 또는 침략 전쟁일 때는 외부에서 통제할 여지가 별로 없다. 나치 독일이 그런 경우이고, 미국이 인류사상 첫 핵무기를 먼저 개발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을 쓴 콜린 그레이 등 영국 학자들은 오늘 날 핵보유를 꾀하는 나라를 나치 독일처럼 사악하거나 어리석게 보는 것은 잘못이라면서, 이런 과오가 핵확산 억제를 위한 국제적 논란을 왜곡시킨다고 지적했다. 모든 나라의 핵보유 정책이 항상 합리적이지는 않지만, 적어도 각자 처한 상황에서는 이성적 선택이라는 것이다.
■ 이런 관점에서 보면 미국은 북핵 저지를 외치면서도 애초 바람직한 방향과는 동떨어진 행보를 계속했다. 북한을 줄곧 사악하고 몰이성적인 집단으로 규정한 것부터 그렇다. 핵 개발이 오로지 자위를 위한 ‘약자의 무기’라는 사실을 건성으로나마 인정하기는커녕, 상상하기조차 힘든 미 본토 공격까지 노린다는 악선전을 되풀이했다. 그러면서 미국이 체제존립을 위협한다는 불안감을 해소시킬 분명한 약속은 하지 않았다. 먼저 핵을 포기하면 체제보장을 하겠다면서도, 믿을만한 대안이라는 신뢰를 주는 것과 거리 먼 적대적 조치를 계속한 것을 부정할 수 없다.
■ 이 모든 게 설득을 위한 압박이었다고 말할 수도 있다. 북한의 핵보유 선언에 미국과 우리정부가 보인 반응과 대책도 그런 논리다. 그러나 당근이든 채찍이든 효과는 상대가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달렸다. 객관적 국제 언론은 누가 뭐라고 하든 북핵 저지정책은 이미 좌초했다고 본다. 한미 두 나라는 각기 다른 사정 때문에 이를 부정하지만, 진정한 양보조치 없이 협상 재개는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다. 그렇다면 미국은 왜 쉬운 선택을 놔둔 채 굳이 어려운 길을 가는지 다시 물을 수밖에 없다.
강병태 논설위원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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