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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자 춘추] 에움길의 아름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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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자 춘추] 에움길의 아름다움

입력
2005.02.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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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중 속에 첨단의 로봇이 하나 있다. 그 로봇에게 이런 명령을 한다. "최단 거리를 경유해서 내게 도달하라." 로봇은 한 점에서 한 점을 잇는 최단 거리는 직선이라는 수학적 판단에 따라 사람의 머리통을 밟으며 지나갈지도 모른다. 대륙간 탄도미사일이 새떼들의 비행을 고려하여 우회했다는 뉴스를 들어보았는가. 태풍이나 우박이 농작물을 피해서 진로를 변경했다는 뉴스를 보았는가. 무생물은 냉정하게 자신의 길을 간다. 생명체가 자신의 앞에 있든지 없든지 안중에도 없다. 그것은 브레이크가 고장 난 기계의 길이다.

인간의 길은 ‘우회하는 길’이다. 인간은 인간만을 위해서 우회하지 않는다. 생물의 군락지를 훼손하지 않기 위해서 우회하는 고속도로, 문화유산을 보호하기 위해 우회하는 철도, 생태계를 보호하기 위해 우회하는 국도, 연어의 회귀처를 보호하기 위해 건설을 중단하는 발전소를 보라. 비용이 더 들더라도 최단의 길을 가지 않고 우회하는 길, 그것이 인간의 길이다.

기하학은 한 점에서 한 점을 잇는 가장 가까운 거리는 직선이라고 답하지만 인간의 지혜는 이렇듯 굽은 길을 만들어 낸다. 효율성, 생산성 따위의 덕목들은 과학과 기술에서는 최선일지 몰라도 피와 살이 있는 인간에게는 최선일 수 없다. 직선 길에서는 액셀러레이터를 밟지만 커브길에서는 브레이크를 밟는 것이 인간의 마음이다.

속도를 늦추어야 하는 에움길, 그 길에서 시간은 더디게 흘러간다. 시간이 더디게 흘러갔으면 하는 마음, 사랑의 시간을 조금이라도 늘이고 싶은 마음, 그것은 또한 연인의 마음이지 않은가. 오솔길이 아름다운 것은 바로 그 길이 가지고 있는 비효율성 때문이 아닐까.

김보일 배문고 교사·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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