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7년 2월16일 경성방송국이 정식으로 첫 전파를 발사했다. 호출부호 JODK, 출력 1kW, 주파수 690kHz. 광고 없이 청취료가 유일한 재원이었고, 한국어와 일본어를 교대로 쓰는 단일채널 방송이었으며, 조선총독부 체신국 검열과의 사전 검열을 받았다. 조선에서 정규 라디오 방송이 나간 것은 미국(1920),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에 이어 세계에서 여섯 번째였다. 이런 예외적 순위가 그 당시 조선이 일본제국의 일부였던 덕이라는 것은, 흔쾌히 인정하긴 싫을지라도 사실이다.
경성방송국이 설립된 것은 그 전해 11월30일이다. 총독부는 1924년 11월 체신국에 무선실험실을 설치해 시험방송 전파를 쏜 이래 2년 3개월여 만에 방송무선전화시설을 인가했다. 1932년 조선방송협회로 이름을 바꾼 경성방송국은 이듬해부터 채널을 분리해 제1방송은 일본어로, 제2방송은 한국어로 내보냈고, 연희송신소를 준공해 출력도 10kW로 높였다. 1935년 첫 지방 방송국인 부산방송국이 문을 열었고, 1945년 해방까지 주요 도시들에 16개의 지방방송국이 설치됐다. 조선방송협회는 해방 이후 중앙방송국(호출부호 HLKA)으로 새롭게 출발했고, 여러 차례의 개편과 통폐합을 거쳐 오늘날 한국 최대의 매스컴인 한국방송(KBS)이 되었다.
한국어‘방송(放送)’은 일본어 ‘호소(放送)’의 영향으로 ‘보도나 연예를 라디오나 텔레비전의 전파에 실어 내보냄’을 뜻하게 되었지만, 원래 조선어에서는 ‘죄인을 풀어 줌’이라는 뜻이었다. 이렇게 일본어 단어를 덮어쓰는 바람에 뜻이 변하게 된 우리말 단어들이 꽤 있다. 예를 하나만 들어보자면 ‘발명(發明)’은 본디 ‘죄가 없음을 말하여 밝힘’ 곧 ‘변명’의 뜻이었는데, 일본어 ‘하쓰메이(發明)’의 영향으로 이젠 대개 ‘새로운 기술이나 물건 따위를 만들어냄’이라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고종석 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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