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은 산업이다’라는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은 대학에 대한 현 정권의 몰이해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산업의 논리는 곧 시장의 논리이며 이는 경쟁을 통한 적자생존과 일맥상통한다. 시장 적응력의 결과로 나타나는 적자생존식 시각으로는 연구를 통해 진리를 탐구하고 가치를 창조하며, 교육을 통해 백년대계를 세우고자 하는 대학의 본질을 결코 이해할 수 없다.
시장은 공짜를 용납하지 않는다. 그러나 대학은 국가와 시장에 대해 ‘최대 지원, 최소 간섭’을 요구하는, 어찌 보면 이율배반의 염치없는 집단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는 대학이 본연의 기능을 가장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기본 조건이다. 대학 학문 활동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대학이 스스로의 동기에 의해 연구와 교육을 하되, 그러한 자율이 유지될 수 있는 물적 기반을 사회가 마련해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어느 시대이건 대학은 그를 둘러싼 시장을 무시할 수 없다. 시장은 대학에서 길러낸 인재들이 대학에서 배운 지식을 활용할 수 있는 기반이기 때문이다. 대학과 기업은 통(通)해야 한다는 말이 그런 맥락이다. 하지만 대학은 기업이 요구하는 인재를 전화 한 통에 자장면 배달하듯 인스턴트 맞춤형으로 길러내는 곳이 아니다. 수익창출을 위해 무한 경쟁을 하는 기업의 요구를 대학이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면 단기적으로 취업률에 도움이 될 수 있을 지는 모르나 장기적으로는 대학의 존립근거 자체를 스스로 무너뜨리게 된다. 인문학의 위기가 대표적인 예이다.
대학은 교육을 통해 변화하는 세상에 적응할 수 있는 거시적이고 장기적인 시각을 길러주어야 한다. 예를 들어 오늘날 같이 급변하는 테크노피아 시대에 공과대학에서 기술 한 가지를 가르치기 보다는 기술의 변화를 읽을 수 있는 안목을 가르쳐야 한다. 요즘 대졸 신입사원들이 기업의 요구 수준에 미흡하다고 불평하는 기업인들이 있다. 이는 기업이 스스로의 책무를 망각한 발언이다. 기업은 해당 분야의 기초가 잘 다져진 인재들을 채용한 후, 구체적인 업무에서 요구되는 실질적인 지식과 기술을 가르쳐서 더욱 생산성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야 한다. 이 것이 기업의 인력 투자다. 더욱이 한국 기업이 그런 요구를 할 수 있을 정도로 대학의 순수연구와 교육에 충분한 지원을 한 적이 있는지 반문해 보기 바란다.
대학 개혁의 궁극적 목표는 대학이 국가의 간섭으로부터 벗어나 진리탐구의 요람이 되고, 사회에 대해 비판과 고언을 아끼지 않는 빛과 소금의 전당이 되게 하는 것이다. 그간 한국 대학사는 공권력의 대학 지배에 저항하는 투쟁 과정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과거 권위주의 시절 캠퍼스에까지 진입한 군과 경찰이 자율과 자치를 본질로 하는 대학의 존립근거 자체를 무차별로 짓밟을 때 많은 교수와 학생들이 진리 탐구의 보루를 수호하기 위해 맨손으로 싸운 것이 오늘날 우리 대학이 그나마 누리고 있는 자율의 바탕이 되었다. 독일 나치 정권의 대학 개혁에서도 보듯 공권력에 의한 의도적이고 무리한 개입은 대학의 기능을 후퇴시킬 뿐이다. 이는 정부가 대학 개혁의 과정에서 깊이 고려해야 할 점이다.
한국의 대학이 글로벌 시대를 선도하기 위해서는 분명 대수술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러한 대학 개혁은 대학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곳’이라는 본연의 자세로 자리매김하는데 주안점이 두어져야 한다. 우리나라 대학의 근본적인 문제점은 시장이 요구하는 실용적 지식으로 무장한 인력을 양산하지 못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대학 본연의 임무인 진리 탐구와 교육을 소홀히 하는데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학 개혁의 방법은 외부의 일방적 잣대가 아닌, 학문기관으로서 대학 자체의 논리에 근거해야 한다. 대학은 산업이 아니라, 진리이며 미래이다.
이용중 동국대 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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