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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봄의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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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봄의 단상

입력
2005.02.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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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먼 걸인의 모자가 오랫동안 비어 있었다. 지나던 시인이 빈 모자에 눈에 띄도록 글을 남겨 놓았다. '봄은 올 것이다. 그러나, 나는 봄을 보지 못할 것이다. 그 후 많은 사람들이 그곳을 지나며 지갑을 열었다. 전에는 그가 시각 장애인임을 몰랐던가. 알고는 있었으나,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할 정도의 계기가 없었던 셈이다. 언어와 책은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는 데 많은 일을 할 수 있다. 이 얘기는 몇 해 전 독일의 한 문학상 수상 연설 내용이다.

■ 몇 차례 매섭게 춥던 겨울도 가고 있다. 입춘과 설은 지났고, 모0레면 대동강 물도 풀린다는 우수다. 경제에서도 봄이 오는 모양이다. 얼어붙은 소비심리가 풀리고, 내수가 회복되고 있다. 혹한 속에 미니스커트가 유행하던 이번 겨울, 조짐이 좋았다. 미니스커트가 유행하면 경제가 좋아진다는 속설이 있다. 특히 이번 겨울에는 기온이 떨어질수록 미니스커트가 오히려 더 잘 팔리는 기현상이 벌어졌다고 한다. 미니스커트 착용으로 이어진 여인들의 용기와 희망이 추위와 불황을 저만큼 물러나게 한 것이 아닐까.

■ 하지만 내수경기 회복은 아직 백화점이나 신용카드 회사 쪽의 얘기다. 재래시장이나 서민경제 쪽까지는 온기가 충분히 전달되지 못하고 있다. 또한 봄볕을 채 쪼이기도 전에, 성급하고 우울한 기상예보가 봄을 맞는 설렘에 찬물을 끼얹는다. 올해가 기상관측 이래 가장 더운 해가 될 것이라는 미 항공우주국(NASA)의 예보다. 온실가스와 수증기 증가, 엘니뇨 현상 등으로 19세기 말 이후 지구가 가장 더운 한 해를 맞을 것 같다고 한다.

■ 우리 기상청의 해석은 약간 다르다. ‘지구의 평균기온이 가장 더운 해’가 될 수는 있으나, 그것이 곧바로 ‘우리의 가장 무더운 여름’으로 연결되지는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다소 걱정이 덜어지는 듯하지만, 문명의 거대한 수레바퀴 밑에 상실돼 가는 인간의 무공해적 희망은 여전히 초라하다. 루카치의 말처럼, 별이 빛나는 창공을 보고 길의 지도를 읽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오늘은 교토의정서가 발효되는 날이다. 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한 이 의정서가 별과 창공, 행복을 찾아가는 인류의 지도가 되었으면 한다.

박래부 수석논설위원 parkr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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